저소득층 35만명에 인술 ‘벨기에서 온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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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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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 의원 배현정 원장 제21회 아산상 대상
“환자 환경까지 돌봐야 진짜 의사” 34년 외길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현정(본명 마리엘렌 브라쇠르) 전진상의원 원장이 서울 금천구 시흥5동에 있는 전진상의원 진료실에 앉아 있다. 그는 34년간 가난한 이웃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왔다. 사진 제공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현정(본명 마리엘렌 브라쇠르) 전진상의원 원장이 서울 금천구 시흥5동에 있는 전진상의원 진료실에 앉아 있다. 그는 34년간 가난한 이웃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왔다. 사진 제공 아산사회복지재단
1975년 겨울. 서울 금천구 시흥5동 판자촌 골목에 파란 눈의 이방인이 나타났다. 그의 두 손에는 생필품이 담긴 사과 궤짝과 노란 냄비 하나가 달랑 들려 있었다. 낯설어 하는 판자촌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면 누구나 와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을 만들 거예요.”

벨기에인 마리엘렌 브라쇠르 씨(63·여)는 이름을 ‘배현정’으로 개명한 뒤 돈이 없어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왔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30여 년 동안 의료봉사를 해온 전진상(全眞常) 의원 배현정 원장이 18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제21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배 원장은 벨기에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972년 봉사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 단원으로 한국에 왔다. 이후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통해 고 김수환 추기경을 알게 됐고, 김 추기경의 추천으로 1975년 시흥동 판자촌에 정착해 무료 진료소인 ‘전진상 가정복지센터’를 설립했다. ‘전진상’은 ‘온전한 자아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이란 뜻이다.

그는 센터를 연 뒤 자원봉사 의사를 초빙해 월평균 1500명의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배 원장은 간호사로서 사람들을 돕는 데 한계를 느꼈다. 의사들이 오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 원장은 24시간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981년 중앙대 의과대학에 편입해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땄다. 치료뿐 아니라 독거노인, 소외아동 등 불우이웃 가정을 직접 방문해 생계비, 양육비, 장학금을 지원했다.

또 무료 유치원, 공부방을 운영하고 영세주민들의 법률지원에까지 나섰다. 배 원장은 “앉아서 주사만 놓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환자의 환경까지 다 돌볼 수 있어야 진짜 의사다”라고 말했다. 또 말기 암 환자를 돌보기 위해 1988년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후 지난해 가정집을 개조해 10병상의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를 열었다.

배 원장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환자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는 등 34년 동안 시흥동에 거주하며 35만 명의 저소득층에게 인술(仁術)을 베풀었다. 배 씨는 “제 일을 한 것뿐이다. 다른 봉사자들이 도와서 가능했다”고 소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아산상 의료봉사상에는 장애인 무료 치과진료봉사활동을 펼친 재단법인 스마일이, 사회봉사상에는 국내외 입양 연계사업을 펼친 홀트아동복지회가 각각 선정됐다. 다문화가정상 수상자로는 뇌중풍(뇌졸중) 투병 중인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몽골 출신 체벤 씨(38)와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롤리아 코르테스 씨(37)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2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내 아산교육연구관 강당에서 열린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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