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33>‘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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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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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여성기업인에 핸디캡을
“여성경제인 육성해야 경제발전”
국회의원-정부인사 찾아다니며
여경련 법적 인정 설득 나서


장영신 회장은 여성 경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정부 국회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설득 작업을 벌여 여성 경제인 지원법 제정을 이끌었다. 사진은 1998년 2월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정기총회. 사진 제공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여성 경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정부 국회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설득 작업을 벌여 여성 경제인 지원법 제정을 이끌었다. 사진은 1998년 2월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정기총회. 사진 제공 애경그룹
여성 기업인이 무료로 교육을 받도록 해달라는 다소 엉뚱한 부탁에 대해 해당 단체 역시 당황했을 테다. 하지만 고맙게도 요청을 수락했다. 막상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여경련) 소속 여성 기업인이 교육에 참가하면서 교육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전까지는 어떤 단체의 경제관련 교육에 참석하더라도 ‘시커먼’ 넥타이 부대만 가득 앉아 있었는데 여사장이 섞이면서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여사장들은 사업을 하면서 대체로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평범한 여성에 비하면 훨씬 강하고 활달한 성격이라 교육에 참석한 남성 경영인에게 호평을 받았다.

교육문제를 해결한 뒤 여사장 사이에 인맥을 만들어야겠다고 작정하고 회원을 대상으로 제주도 하계세미나와 해외시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경련 워크숍을 정례화했다. 여사장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여경련 조직은 한층 안정되고 외부에서 연합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친목 위주의 활동에서 벗어나 경제 단체로 위상에 맞는 활동과 역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때쯤 나는 여성 경영인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점이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이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는 일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할 방안이 필요했다. 장고(長考) 끝에 여성 경영인이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여성경제인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건강하게 자리 잡도록 법으로 명문화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성경제인연합회는 정부로부터 체계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정식 경제단체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여성 경제인은 1980년 121만6000명(전체 사업자의 26.2%)에서 1995년 161만1000명(전체 사업자의 28.3%)으로 32.5% 늘었다. 대졸 여성의 증가에 비례해 여성 경제인도 급속하게 늘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힘만으로는 어렵다고 평소 생각했다.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이 집에 갇혀 있으면 선진국이 되는 길은 요원하다고 본다. 여성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목적으로 여성 경제인을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법률을 만들려면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여성경제인연합회를 인정해야 했다. 애경화학 대표이던 임성주 사장(현 C&그룹 부회장)이 모든 과정을 열정적으로 도왔다. 나는 임 사장과 함께 국회의원과 정부 주요 인사를 쫓아다녔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를 만나 설명하면 “기존 경제단체를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거나 “왜 여성만을 위한 경제단체가 별도로 있어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았다.

이럴 때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의원님, 이사관님, 골프 자주 치시죠? 필드에서 티오프 할 때도 남성용 티와 여성용 티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까”라고 웃으면서 되물었다. 상대방은 대부분 머쓱한 나머지 웃음을 짓곤 했다. 그럴 때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설득을 해 나갔다.

“바둑을 둘 때도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덤을 주지 않습니까? 왜 그렇겠습니까? 못하는 사람, 약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성 경영인은 회사일에만 전념하면 되고 퇴근 후에는 남성 경영인들끼리 술도 드시고 주말에는 함께 운동도 하면서 인맥을 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 경영인은 퇴근하면 집에서 밥도 차려야 하고 자녀도 돌봐야 합니다. 남성 경영인이 인맥을 쌓고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에 여성은 다른 일을 하느라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러니 여성 경영인에게 핸디캡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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