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음악의 신천지서 희망을 연주하다

  • 입력 2009년 8월 6일 02시 57분


부산 소년의 집
‘알로이시오 관현악단’
오늘 성남아트센터 공연

눈이 맑게 반짝이는 소년들과 옷가지, 콘트라베이스와 플루트, 볶은 깨와 참치 통조림이 더불어 있는 곳.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시립 소년의 집’ 강당이다. 이곳은 지난달 23일부터 보름 동안 소년들의 숙소이자 연습실, 놀이터, 식당이 됐다. 6일 자선음악회를 앞두고 ‘부산 소년의 집’ 소년들이 이곳에 와 살고 있다. 악기를 든 56명의 소년들은 ‘알로이시오 관현악단’ 단원들.

연주를 이틀 앞둔 오후. 정명훈 씨의 셋째 아들인 지휘자 민 씨(25)의 남색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가 현악 파트를 향해 말했다. “얼굴에 긴장이 보여.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해.”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협연하는 첼리스트 송영훈 씨(36)와 함께 아이들이 일제히 활을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제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음악의 힘… 인내와 협동의 가치 배워

박민혁 군(17·트롬본)은 중1 때 오케스트라에 들어왔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끼리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그는 힘들 때면 혼자 트롬본을 분다.

‘소년의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1인 1악기’ 원칙에 따라 악기를 배운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거나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소년들에게 음악은 벗이자 스승이다. 윤경대 군(17·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전에는 욕도 했는데 음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이젠 안 그런다”고 했다.

후배들의 연주회를 돕는 졸업생 최진욱 씨(24·호른)는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외롭지 않았다”며 “호른 솔로를 연주하면서 이전에 몰랐던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연습이 끝난 뒤 구석에서 연주복 바지를 다림질하는 조민식 군(16·오보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4월 전국 학생음악콩쿠르에서 중등부 관악부문 2등을 했다. “흔치 않은 오보에를 연주하니까 전 특별한 사람이에요.”

오케스트라에서 아이들은 인내와 협동, 공동체의 가치, 인생을 배운다. 음악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주었다.

○ 꿈을 선물한 아름다운 사람들

지휘자 정 씨는 독일 자르브뤼켄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지난해 처음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섰을 때엔 한국말이 서툴러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 지금은 아이들과 무리 없이 대화한다. 지난해엔 정명훈 씨가 아이들의 낡은 현악기 35대를 새 것으로 바꿔줬다. 정 씨의 큰형 진 씨(29)는 건축 디자이너, 둘째 형 선 씨(27)는 재즈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1984년부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온 박 불케리아 수녀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음악을 이야기하고 협연해준 분들 덕분에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장영주 씨(바이올린), 정명화 씨(첼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노), 양성원 연세대 교수(첼로) 등이 소년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1999년 장영주 씨는 독주회 때 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자리에서 “음악은 기쁜 것이다. 마음껏 즐기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정성환 군(18)은 바이올린 연주를 선택했다.

휴식 시간 보면대에 펼쳐진 악보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지난해 내한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곡이다. 힘차고 열정적인 4악장은 이석원 군(16·바이올린)이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악보의 ‘피우 아니마토(Pi`u animato) 옆에 삐뚤삐뚤한 연필 글씨로 ‘더욱 씩씩하게’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6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1만∼3만 원. 070-8800-7119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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