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걸고 체세포 복제 도전”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정형민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연구책임자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데 전력을 쏟겠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정형민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연구책임자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데 전력을 쏟겠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황우석式 연구’는 근거 없는 말”

■ 연구계획 승인받은 차병원 정형민 교수

“성과 있기전엔 인터뷰도 안할 것

인간배아줄기세포 100개 만들면

우리나라 인구 85~90%가 혜택”

그는 이 인터뷰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승인을 받은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연구책임자인 정형민 교수(45). 그는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전까지 언론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 과학자는 결과로 말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의 연구 앞에는 ‘황우석식(式)’이라는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마케팅적 측면으로 보면 최악의 ‘브랜드 네임’이다. 많은 사람은 ‘과학사의 오명’ ‘국제적 망신’ ‘지적재산 손실’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고 나서 3년 동안 “황우석식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다시 하겠다”고 나선 사람도 없었다.

정 교수가 이끄는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는 정부에 연구 승인 요청을 한 지 1년여 만에 허가를 받았다. 불명예로 얼룩진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구하기’가 시작된 셈이다. 30일 오전 기자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연구실을 찾았을 때 정 교수는 쏟아지는 축하 전화에 답하느라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연구에서 ‘황우석식’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수립 방식은 황우석 박사 전에도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황우석식’ 줄기세포 연구라는 단어는 자극적이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성공하면 ‘정형민식’ 연구라고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전 세계가 검증하자고 달려들어 허점이 있나 없나 보려고 들 것입니다. 조그만 실수가 나와도 옷 벗고 길거리로 나가겠다는, 내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입니다.”

정 교수가 이렇게까지 이 연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가능성이 있고, 성공하면 어떤 줄기세포보다 분화력이 뛰어난 줄기세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인생 절반을 동물과 인간의 난자, 정자, 배아에 바친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됐다.

정 교수는 건국대 축산학과에서 동물생명공학을 전공했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건국대 동물자원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994년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불임연구실장으로 오면서 자연과학에서 배운 기술을 처음 인간의 임상에 접목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시험관아기 시술 초기 단계였다. 그는 불임시술로 아기가 성공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다 1998년 11월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교수가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릎을 쳤다. “이 연구를 우리가 했어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움에서였다. 배아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였다. 정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차병원 재단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000년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연구소에서는 성체줄기세포, 수정란 줄기세포, 역분화 줄기세포 등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100개의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는 31주다. 정 교수는 “일본 교토대 재생의학연구소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 200개를 만들면 1억2000만 명 일본 인구 95%의 세포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100개만 있으면 이것이 무한 증식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85∼90%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하면 미국 생명공학기업 제론보다 한 발 앞서 치료제를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제론사는 올 8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손상 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환자에 적용하는 사례다. 정 교수팀도 ‘망막 손실로 인한 실명치료제’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상태다. 그 결과도 8월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두 기술이 동시에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면 진행과정은 정 교수 팀 쪽이 더 빠를 공산이 크다. 손상된 척추를 되살리는 것보다 망가진 망막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해 여기서 얻은 배아줄기세포를 망막치료제 기술에 접목한다면 우리나라가 최초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치료제’를 만든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 기간은 3년이다. 앞으로 1년∼1년 반이 중요하다. 그는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줄기세포 하나는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실추된 국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명예를 구하려는 정 교수의 질주가 이제 막 시작됐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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