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적’이 나를 살렸죠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교통사고 장애 이기고 풀코스 완주 김천수 부장판사

“걷지도 못하던 제가 마라톤 완주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 김천수(45·사진) 부장판사는 지난 1년 동안 ‘마라톤의 기적’을 손수 경험했다.

교통사고로 한때 혼자 걷지도 못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입문 9개월 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고독한 경기라고 얘기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완주의 기쁨을 맛본 저에게 마라톤은 동료와 함께하는 따뜻한 종목이죠.”

김 부장판사는 수원지법에 근무하던 1997년 큰 사고를 당했다.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그가 운전하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허리를 다친 그는 35% 영구 장애 판정까지 받았다. 수술 후 일어서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마라톤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서부지법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난해 3월 지법 내 마라톤 동호회인 ‘서지 마라’의 회장을 권유받았다. 지법 내 동호회는 부장판사가 회장을 맡는 관례가 있는데 마침 마라톤 동호회 회장이 공석이었던 것.

“나는 뛸 수 없는 몸이라 마다했지만 한사코 권유해서 후원이라도 하겠다는 의미로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회원들이 모두 뛰는데 회장만 팔짱끼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첫 연습에 나선 그는 2km를 뛰었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일주일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고, 가족과 친구들은 “당장 그만두라”며 말렸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다시 뛸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지난해 4월 첫 10km를 뛰었고, 6월에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동호회에서는 첫 완주를 하는 사람을 위해 연말 시상을 하는데 지난해 수상 예정자가 없었던 것. 주위에서는 “회장님이 풀코스에 성공하면 된다”며 ‘압력’을 넣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1월 5시간 이내의 좋은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후 20여 명이던 동호회 회원은 50명을 넘겼다. 경사가 겹친 셈이다. 그는 3월 동아마라톤 겸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한다.

“올해 안에 3시간 30분 이내로 뛰는 게 목표입니다. 보스턴 마라톤에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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