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호킹’ 이상묵 교수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나눔의 부축 받고 일어선 교수

더 큰 나눔의 손 세상에 내밀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절망의 늪에서 그를 깨운 건 일면식 없던 교수의 1억 성금 특수 휠체어 타고 강단에 복귀 이제는 장학기금 만들어 더 많은 희망의 씨앗 뿌린다》

한국판 ‘스티븐 호킹 교수’로 통하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는 같은 대학 이건우(공대)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저 아세요?”

지난해 봄, 서울의 한 호텔에서였다. 이상묵 교수는 2006년 7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자신에게 이건우 교수가 1억 원을 선뜻 건넨 이유가 궁금했다. ‘같은 대학이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왜 그랬을까.’ 이건우 교수는 전도유망한 학자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건우 교수는 그해 11월 경암학술상을 받았다. 그는 “(이상묵 교수를 도우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싶어 상금을 전달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이상묵 교수는 “이름도 모르는 분이 나를 위해 큰돈을 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며 감사해했다.

이상묵 교수는 미국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캘리포니아 주 카리조플레인 국립공원에서 지질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사고로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다. 함께 차에 있던 제자 5명 중 이혜정(여·당시 24세) 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처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자 생각에 괴로운 날이 계속됐다.

생면부지인 이건우 교수가 이때 경암학술상 상금 1억 원을 그에게 전달했다.

재활의 시간이 힘들게, 하지만 서서히 지났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이상묵 교수는 특수 제작된 휠체어를 타고 강단에 복귀했다.

기자가 6일 서울대 23-1동 강의실 304호를 찾았을 때 학생 30여 명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바다의 탐구’ 과목을 강의할 이 교수가 들어와 “자. 그럼 먼저 출석부터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조용해졌다.

그는 입김으로 작동시키는 특수 마우스를 이용해 노트북 파일을 열고 출석부에 있는 학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이어 자료를 화면에 띄워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목 위 얼굴만 움직일 수 있지만 웹서핑을 하고 논문을 쓴다. 전화와 컴퓨터, 휠체어를 연결해 전화도 직접 걸고 받는다.

그는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처럼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활할 수도 있구나’ 하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희망을 나눠주려고 한다. 제자의 이름을 딴 ‘이혜정 장학기금’을 통해서다. 사재 5000만 원과 학교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아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눔을 베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희망의 씨앗’을 전달한 이건우 교수는 “거창한 의미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경암학술상을 만든 송금조 회장에서부터 시작된 한 알의 밀알과 같은 나눔이 점점 커져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겸손해했다.

이상묵 교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비롯해 여러 단체에서 강의를 요청했다. 연구 협력 제의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하루하루가 무척 빨리 지나간다. 장학금이든, 강의든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야 비로소 나눔이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다시 나눔을 만들어 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강의를 준비하려고 입김을 불어가며 마우스를 움직이던 이상묵 교수가 기자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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