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서 41년’ 유엔사 군정위 통역관 홍흥기 씨 은퇴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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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 판문점에서 통역을 맡아 오다 지난달 30일 은퇴한 홍흥기 씨. 홍 씨는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1968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년) 등 남북관계의 생생한 현장을 판문점에서 지켜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연합뉴스
41년간 판문점에서 통역을 맡아 오다 지난달 30일 은퇴한 홍흥기 씨. 홍 씨는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1968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년) 등 남북관계의 생생한 현장을 판문점에서 지켜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연합뉴스
판문점에서 41년간 통역업무를 담당해 온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산증인이 최근 은퇴했다.

1966년부터 유엔사 군정위 소속 통역관으로 활동하다 지난달 30일 74세로 은퇴한 홍흥기 씨가 주인공.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홍 씨는 시험을 통해 유엔군 군정위 통역관이 된 뒤 판문점에서 열린 군정위 회의에 참석해 유엔군 측 대표들의 통역을 맡아 왔다.

홍 씨는 “남북 간 문화와 언어의 이질화로 남측 젊은 통역사들이 북측 대표들이 자주 쓰는 고사성어나 순우리말 등을 못 알아듣고 당황해하는 일이 많다”면서 “반면 북측 대표들은 남측 대표들의 외래어와 최신 용어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해 영어 통역보다 한글 통역이 더 힘든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표가 자주 바뀌는 남측에 비해 북측 군정위 측은 임기가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대표직을 유지한다”며 “현재 북한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인 이찬복 상장은 통역사 출신으로 대표까지 오른 인물로 눈빛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68년 1·21청와대습격사건과 같은 해 발생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 북한의 도발로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닫던 생생한 현장을 그는 판문점에서 목격했다.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1970년대 북한이 남한 주민은 온통 굶주림에 시달리고 거지들뿐이라고 선전하자 유엔군 측은 군정위에서 서울의 발전상을 담은 20분짜리 영상물을 상영했다.

이에 북측 대표단은 삿대질을 해 가며 “당장 집어치우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중에 유일하게 침묵을 지키며 영상물을 본 북측 수석대표(한국군 소장에 해당)는 다음 회의부터 교체됐다.

또 2002년 6월 북측과 유엔사 간의 장성급 회담 도중 북측으로부터 서해교전이 발발한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일도 생생하다.

홍 씨는 “6·15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북측은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를 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유엔사 군정위에는 홍 씨의 뒤를 이어 30대 3명과 50대 2명이 각각 통역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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