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이글’ 故 김도현 소령 순직 20일 전 최후의 육성 인터뷰

  • 입력 2006년 5월 23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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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금 발매중인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신동아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비행기… 나는 늘 죽음을 안고 산다”

지난 5월8일 오전 10시30분.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제8전투비행단 강당에서 진행된 영결식을 끝으로 블랙이글팀 고(故) 김도현(33) 소령은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공군을 떠나‘천국의 기지’를 향해 영원한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사고가 나기 불과 20일 전인 지난 4월14일, 블랙이글팀을 취재하면서 만난 김도현 소령. 그의 선한 웃음, 겸손한 어투, 그리고 그와 술자리에서 나눈 인상적인 대화가 선연하게 떠올랐다. 동기생들이 한결같이 ‘참모총장감’이라고 입을 모을 만큼 뛰어난 한 조종사의 죽음.

탁월한 비행실력은 물론 선후배의 신뢰까지 한몸에 받았기에 그의 순직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이제 김 소령에 대한 추모의 심정으로 그와의 짧은 만남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그 순간엔 상상도 못했지만, 필자는 그의 마지막 육성을 전해줄 최후의 인터뷰어였다.

이 기사는 지금 발매중인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전문은 신동아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공군사관학교 달력 모델

김도현 소령은 30대 초반이지만 탁월한 비행실력을 지닌 조종사였다. 김 소령은 공군사관학교(44기) 생도 시절어느 여름날. 전 생도에게 운동장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지휘장교가 생도들에게 모두 모자를 벗으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발 상태를 점검하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집합을 시킨 이유는 사관생도를 대표할 모델을 찾기 위해서였다. ‘미남’을 찾아 살피던 장교는 김 소령을 지목했고, 그는 얼마 후 공군사관학교 홍보 캘린더의 모델이 돼 있었다.

▼ 죽음 부른 ‘轉禍爲福’

블랙이글팀이 그렇게 좋아요?

“있으라면 평생 있고 싶죠, 하하….”

누군가를 정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김도현 소령이 먼저 나서며 말했다. 이것이 그에게서 들은 첫마디였다. 자연히 인터뷰는 그에게 집중됐다. 블랙이글 근무기간은 3년. 하지만 블랙이글을 향한 그의 애정은 3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란 걸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블랙이글에는 어떤 인연으로 들어오게 됐습니까.

“블랙이글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멋있기도 하고, 최정예 조종사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까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2004년 하반기에 블랙이글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영광이었죠. 하지만 막상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듣는 순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를 해야 했습니다. ‘아, 내가 왜 축구를 했을까…’ 하고요. 그 무렵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비행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후회 정도가 아니라 한이 맺히더군요. ‘이제 블랙이글에 들어가는 꿈은 끝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블랙이글이 저를 기다려준 겁니다. 덕분에 더 무리하지 않고 다리가 온전히 나은 뒤에 블랙이글에 들어왔어요. 제 인생에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맞은 것 같습니다.”

전화위복. 하지만 지금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전화위복이 아니었다. 김 소령이 사고를 당한 직후 블랙이글팀 김태일 소령은 “내가 (블랙이글에) 오라고 그랬어, 내가…”라며 눈물을 뿌렸다. 차라리 그때 ‘우린 널 기다릴 수 없다, 제 몸 하나 관리 못하는 조종사는 필요없다’고 매몰차게 잘랐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비록 ‘꿈’이 깨진 좌절 속에 방황하더라도 젊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그것도 결혼기념일에 이세상과 결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을.

▼ 의리의 청년

-블랙이글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2005년 2월에 배속됐으니 이제 1년 조금 넘었죠.”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하던 블랙이글인데, 실제로 해보니까 어떤가요.

“군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지만 이렇게 남자답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곳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의리와 믿음으로 똘똘 뭉친 남자의 세계죠.”

▼ 입어보지 못한 커플 잠옷

-하늘에 있으면 늘 긴장상태겠군요.

“에어쇼나 전투임무 훈련비행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지만, 일반비행을 할 때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감탄하기도 해요. 한번은 강원도 정선 상공을 날고 있었는데 너무 예쁘더군요 ‘이 다음에 가족들이랑 놀러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즐거워했죠.”

김 소령은 그 얘기를 하면서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김 소령. 사랑하는 가족과의 정선 여행은, 그렇게 하늘에서의 즐거운 다짐으로 영영 끝나고 말았다.

순직 전날인 5월4일, 그는 어렵사리 하루 휴가를 냈다. 다음날인 어린이날은 그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에어쇼 때문에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에 전날 휴가를 내고 경남 고성의 공룡박물관에 들러 오랜만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날 김 소령은 몰래 결혼기념일 선물을 준비했다. 하트 무늬가 새겨진 커플 잠옷. 하지만 그는 그 예쁜 잠옷을 아내와 함께 입어볼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아내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 1∼2m 간격으로 곡예비행

-긴장 속에 비행을 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도 많이 겪겠군요.

“윙크를 하면서 비행하는 경우도 많아요(그는 코믹하게 윙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비행 중에는 햇빛도 비행을 방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직사광선이 들어오니까 땀이 많이 나서 눈으로 흘러내려요. 그런데 땀을 닦을 여유조차 없거든요.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연신 윙크를 하면서 비행하는 거죠. 동료 하나는 비행 중에 산소마스크가 터진 적도 있어요. 물론 당장 숨을 못 쉬는 건 아니지만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곡예비행을 할 때 비행기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됩니까.

“1∼2m쯤 돼요.”

입이 딱 벌어졌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1∼2m간격을 유지하며 이리저리 곡예운전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것도 아찔한 일인데, 하물며 시속 600km로 곡예비행을 하는 비행기들의 간격이 1~2m라니. 그러니 조종사에게 단 0.001초의 판단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동료까지 죽일 수 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김 소령의 얼굴에도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공연을 해봤습니까.

“우리는 해외에서 공연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제일 공연을 해보고 싶은 곳이 제주도인데, 그것도 못해요. 제주도까지 날아가서 공연할 수 있을 만큼 기름을 많이 넣을 수가 없거든요.”

▼ “조종사들은 모두 로맨티스트”

-비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서 그런가요.

“그렇죠. 블랙이글팀의 비행기인 A-37은 35년 전에 생산된 기종이에요.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비행기를 매일 몰고 있어요. 정말, 두 살이나 더 많네요(웃음). 저나 제 동료들은 늘 죽음을 안고 살아요….”

-그렇게 낡은 비행기로 어떻게 그런 예술 같은 비행을 하죠?

“이탈리아의 한 비행전문가가 ‘한국의 블랙이글팀은 티코를 타고 쏘나타와 같은 성능을 낸다’고 한 적이 있어요. 비행기 자체의 성능을 보자면 F-16이나 팬텀기에 비해 A-37은 정말 티코급이죠. 하지만 이 비행기로 보여주는 에어쇼는 수준급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에어쇼 홍보 팸플릿을 만들 때 블랙이글 사진을 많이 쓴다고 들었어요.”

▼ 김 소령의 마지막 메시지

이번 추락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종(機種) 노후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공군도 A-37이 노후 기종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숙달된 정비사들이 매일처럼 최선을 다해 비행기를 정비하므로 기종 노후화가 사고로 직결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김 소령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다른 젊은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조치와 대책이 필요하다. 티코를 내주면서 오로지 정신력으로 쏘나타 성능을 내라고 다그치는 건 우리의 국력에도 어울리는 모양새가 아니다. 공군이 제대로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김 소령이 죽음으로 보여준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이남훈 자유기고가 freehook@hanmail.net

**이 기사는 지금 발매중인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전문은 신동아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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