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한국 대학생들과 ‘생맥줏집 토론’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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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씨(오른쪽)가 18일 저녁 고려대 인근 생맥줏집에서 고려대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제공 고려대
방한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씨(오른쪽)가 18일 저녁 고려대 인근 생맥줏집에서 고려대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제공 고려대
“오에 선생님이 해 오신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의 전망을 낙관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고려대 일문과 00학번 박종현 씨)

“나는…미래를 낙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헌법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겠습니다.”(오에 겐자부로 씨)

18일 고려대에서는 ‘특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71) 씨와 고려대 학생들이 만난 것. 고려대 문과대 초청으로 방한한 오에 씨가 한국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며 특별히 부탁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오후 고려대 100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시작된 만남은 인근 생맥줏집으로 이어져 4시간 넘게 계속됐다.

사학과 04학번 원민주 씨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서 서로가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선 분명히 기억하는데 각자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오에 씨는 “역사에서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며 “권력의 압력에 의해 왜곡되는 역사의 기억을 새롭게 고쳐 나가는 것이 내 역할이고 지식인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힘없는 사람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기억’이고 내가 하는 문학은 기억을 글로 옮기고 전하는 행위입니다.”

학생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대해 평가해 달라”(사회학과 한상원 씨),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전후 세대는 과거 전쟁의 상처에 무관심한 게 아닌가”(일문과 석사과정 김주현 씨)라는 질문도 던졌다. 이에 대해 오에 씨는 “고이즈미 총리는 ‘대화’라는 게 없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학이 유행이나 대중성을 좇아가는 것으로는 존재 의의가 불안정하지 않은가”(일문과 박사과정 고영란 씨)라는 질문에 오에 씨는 “나는 인터넷 채팅도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표현으로부터 새로운 문학이 나오고, 그것이 새로운 독자를 이끌어내지 않겠느냐”는 것.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부모로서의 어려움을 묻자(교육대학원 박정훈 씨) 오에 씨는 “장애아들끼리도 장애의 경중에 따라 차별을 겪는다”면서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이날 만남은 학생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아 오에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됐다. 오에 씨는 “한국 학생들이 대단히 혈기왕성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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