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 4남 주광조 씨 “부친 뜻 기려 장학사업 확대”

  • 입력 2006년 4월 21일 03시 02분


코멘트
일제강점기인 1939년 12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평양노회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2개월 전 평양경찰서에 세 번째로 붙잡혀 간 주기철(1897∼1944) 목사에 대해 목사직 파면을 결정했다.

그 전해에 신사 참배를 결의한 평양노회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1940년 주 목사의 평양 산정현교회는 폐쇄되고 가족들은 목사관에서 쫓겨났다. 그 후 석방되었다가 다시 구속된 주 목사는 1944년 4월 21일 부인과 마지막 면회 후 밤중에 순교하고 만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17일 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참회예배를 올리고 주 목사의 목사직 복적을 결의했다. 현재의 평양노회는 6·25전쟁 당시 월남한 목사들을 주축으로 설립됐으며 남한 내 200여 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이날 유족 대표로 예배에 참석했던 주 목사의 4남 주광조(75·영락교회 은퇴장로·극동방송 고문·사진) 씨는 “고맙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고 말했다.

주 씨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복적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목사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어찌 사람이 파면하고 복적시키고 할 수 있느냔 말이다. 부친도 생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1937년 평양 목사관 서재에서 아버지 주기철 목사의 품에 안긴 주광조(당시 5세) 씨. 사진 제공 주광조 씨

그는 “다만 세상적인 제도로 보아 잘못된 것을 뉘우치는 것에 대해서는 절차상 받아들이고 감사한다”고 말했다.

주 씨는 평양노회 측에서 ‘유족에 대해 어떻게 보상을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우리 가족이 목사관에서 쫓겨난 뒤 거리를 방황하며 고생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겠느냐”며 ‘주기철 목사 기념사업회’가 장신대 총신대 고신대 3개 신학교 학생들에게 주고 있는 장학금(4년 등록금 전액)을 공동 부담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남북화해 시대가 오면 주 목사가 시무했던 평양 산정현교회를 복원해 줄 것도 요청했다고 말했다.

매년 주 목사가 순교한 4월 21일에는 그 후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장로교 교단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추모예배를 올림으로써 자연스럽게 교회 일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올해에는 추모예배가 일요일인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정현교회에서 봉헌된다. 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제11회 주기철 목사 기념강좌’도 11일 고신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렸다.

평양 산정현교회가 폐쇄된 뒤 신자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같은 이름의 교회를 여러 곳에 세워 현재 산정현교회는 서울에 3곳, 부산 1곳, 경남 합천 1곳, 미국 뉴욕에 1곳이 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