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정치권 ‘그때 그 사람’]‘그대의 봄날’은 올까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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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에도 정치권에선 수많은 별들이 명멸(明滅)했다. 일부는 정치권의 ‘새별’로 부상해 화려한 주목을 받았지만 한편에선 정치적 패배의 ‘쓴맛’을 맛보며 은둔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이회창 前총재…개인 사무실 오픈, 정치재개說은 일축▼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는 새해 1월 1, 2일 이틀간 서울 옥인동 자택을 개방하기로 했다. 홍역을 치렀던 대선자금 수사의 한복판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왔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아직 대선자금 수사의 ‘멍에’를 완전히 벗은 것은 아니다. 김영일(金榮馹) 전 의원과 서정우(徐廷友) 전 후보법률고문 등 측근들이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이 전 총재는 이런 상황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총재가 10월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냈지만 대외적인 행보를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친했던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들을 간간이 만날 뿐이다 .

여권이 자신의 ‘정치재개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대해 그는 “(여권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그런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 다만 경제위기와 정치권의 ‘편가르기’가 계속되는 상황에 대해선 “나라가 이렇게 가선 큰 일”이라며 걱정하고 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서청원 前대표…‘불법 정치자금’ 재판중▼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는 요즘 정치와 거리를 둔 채 건강을 챙기는 데 주로 힘을 쏟고 있다. 1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하면서 생긴 허리 디스크가 호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감 중이던 7월 허리 수술도 받았다.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손과 발이 저리는 증상까지 생겨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8월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된 서 전 대표는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정치적인 행보는 하지 않을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선고는 내년 초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서 전 대표는 민주계 인사 등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정치인들과는 간혹 만나고 있다. 서 전 대표는 또 이달 중순 경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를 오랜만에 만나 폭탄주를 마시며 회포를 푼 것으로 전해졌다. 서 전 대표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 전 총재의 중앙선대위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추미애 前의원…美서 연수, 소홀했던 엄마 역할에 열심▼

17대 총선 과정에서 ‘탄핵 역풍’으로 민주당이 위기에 처하자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던 추미애(秋美愛) 전 의원.

낙선과 당의 몰락에 따른 아픔을 뒤로 하고 8월 미국 연수길에 올랐던 그는 요즘 ‘추다르크’가 아닌 평범한 연수생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 향후 거취와 국내정치 문제를 물으면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

추 전 의원은 현재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있는 국제대학원에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 매일 아침 뉴저지 주의 집에서 뉴욕으로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학교를 빼먹는 일은 거의 없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재충전을 하고 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남편만을 국내에 두고 도미한 그는 세 자녀의 학교 숙제를 일일이 챙기는 등 정치활동을 하느라 소홀했던 엄마의 역할을 다하는 데도 열심이라고 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김종필 前총재…정치와는 담 쌓고 바둑 골프로 소일▼

김종필(金鍾泌) 전 자민련 총재는 17대 총선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한 데다 자민련이 4석 밖에 얻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에 그치자 40여 년의 정치생활을 접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주역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여당 당수,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화려한 경력을 밟았지만 ‘만년 2인자’란 꼬리표는 결국 떼지 못한 채 은퇴한 것이다.

그는 5월엔 검찰에 소환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올 한 해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독서와 바둑, 골프로 소일하면서 정치와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낸다는 게 한 측근의 전언이다.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근거지였던 충청권 방문도 자제하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역임한 그는 올 여름 일본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를 만났다. 이달 초에는 대학 강연을 위해 일본의 한 지방을 다녀왔다.

10월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25주기 행사에, 이달 중순엔 박 전 대통령 장남 지만 씨 결혼식에 참석했다. 소원한 관계였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는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부부 동반 식사를 하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정대철 前고문…現정권 원망 접고 내년초 사면 기대감▼

“내년 2월에는 소주 한 잔 합시다.”

부영 채권 6억 원 등을 수수한 혐의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열린우리당 정대철(鄭大哲) 전 고문은 최근 자신을 면회 오는 선후배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는 2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4억1000만 원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었지만 정권 출범에 기여한 여권 중진 중 유일하게 ‘영어의 몸’으로 있다. 그 때문에 노 대통령과 현 정권을 지독히 원망해왔다. 최근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면회 갔을 때는 “형, 나를 정말 이렇게 놔둘 거야”라고 고함치며 책상을 내리치다 부상해 팔에 깁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엔 정권에 대한 비판 대신 자신이 아직 정치적으로 할 일이 있음을 강조하며 ‘내년 2월 사면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그를 면회한 한 측근 의원은 “정 전 고문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따로 가면 안 된다. 빨리 나가서 통합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전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권노갑 前고문…“현대 비자금 억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전 고문은 당뇨합병증으로 투병 중이다. 75세에,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지 1년 4개월째가 된 지금 그는 더 이상 정치인도 실세도 아닌 고령의 환자일 뿐이다.

7일에는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발톱을 모두 뽑는 수술을 했다. 피가 통하지 않아 발끝이 썩기 시작한 데 따른 응급조치였다. 내달 초엔 세브란스병원에서 당뇨로 인한 망막염 수술을 받는다. 심하면 실명으로까지도 갈 수 있는 상태다.

대법원에서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권 전 고문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19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병실을 찾았을 때도 그는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권 전 고문이 안쓰러웠던지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건강에만 유념하라”고 위로했다는 후문이다.

권 전 고문은 수술이 끝난 뒤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그는 최근에도 자신을 찾는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나는 억울하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박지원 前실장…수감중 5차례 수술▼

2004년은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굴곡의 한 해였다.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지 1년 7개월 만인 올 6월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12년 형을 선고받고 절망에 빠졌던 그는 11월 12일 대법원에서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부분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돼 기사회생의 실마리를 찾았다.

박 전 실장은 건강문제로도 고통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 모두 5차례의 각종 수술을 받아야 했다. 녹내장으로 인한 안구수술만 3차례를 받았다. 그를 면회했던 DJ정부 고위관계자가 법무부에 “심리상태가 너무 불안하니 교도관들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특별 감시’를 요청했을 정도로 심리상태도 불안했다. 그러나 최근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 문희상(文喜相) 의원,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등 여권실세들이 ‘호남구애’의 일환으로 줄줄이 문병해 그의 영향력을 새삼 보여주기도 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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