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체적으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일반 형사범들에겐 엄격했지만 범죄에 이르는 과정에 따라 형량을 크게 달리하는 등 범죄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판결을 했다. 또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때는 형식적인 사유를 들어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가 어느 때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등 특별한 성향을 읽기는 어려웠다.
그의 판결에서 보이는 일관성은 오히려 성향보다 성격에서 나타났다. 그는 평소엔 ‘생불(生佛)’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유했지만 사건을 대할 때는 매우 꼼꼼하고 엄격했다. 이 때문에 하급심이 미처 살피지 못한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는 판결이 많았다.
▽꼼꼼한 판결=1994년 3월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그는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이모 피고인에게 형량을 1년으로 줄여줬다. 재판기록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1심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에도 없는 사실을 판결문에 넣은 뒤 형량을 과중하게 선고했던 사실을 찾아낸 것.
같은 달 그는 절도와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8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박모 피고인 등 4명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 재판부가 선고 때 ‘선고 전 구금일수’를 잘못 계산해 피고인들이 열흘 동안 더 복역하도록 판결한 사실을 밝혀냈다.
▽인권침해엔 ‘단호’=92년 1월 서울지법 부장판사 재직 때 그는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金槿泰·현 민주당 국회의원)씨가 “수사관에게 고문을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국가는 김씨에게 4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본인 동의 없는 임의동행과 사후 구속영장 청구, 불법 구금 및 고문 등 불법적인 수사관행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었던 것.
그는 또 94년 4월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검사가 추가로 청구한 치료감호는 기각했다. 이처럼 그는 치료감호나 보안관찰처분 등 국가 공권력의 과도한 제재에 대해 엄격한 판단기준을 적용,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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