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사건 부검의 황적준교수 고대 의대학장 취임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40분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마음놓고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1987년 박종철(朴鍾哲)씨 고문 치사사건 당시 부검의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섰던 고려대 의학과 황적준(黃迪駿·55·사진) 교수. 5일 고려대 의과대학장에 임명된 황 교수는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각종 의문사들을 접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황 교수는 87년 당시 치안본부측으로부터 박씨의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처리하도록 협박을 받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경부압박치사’로 결론 내려 진실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 교수는 박씨 사망 1주기인 88년 초 부검 당시의 일기장을 공개해 전면적인 재수사를 이끌어냄으로써 사건 관련자들이 구속되게 했다.

‘양심선언’으로도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황 교수는 “법의학자로서 부검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밝혔을 뿐인데 너무 미화돼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황 교수가 법의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스승 문국진(文國鎭) 교수의 영향이 컸다. 황 교수는 75년 군 제대를 앞두고 계획했던 미국 병원으로의 진출이 어렵게 되자 고려대 의대 재학 시절 들었던 문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떠올렸다.

“재미있고 인상적인 수업이었죠. 법의학은 미개척 분야인 데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사인(死因)을 명쾌하게 밝혀내는 학문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후 황 교수는 학교로 돌아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됐다.

88년 일기장을 공개한 뒤 연구소에 사표를 낸 황 교수는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병원에서 일하던 중 병원장의 도움으로 3개월간 미국에 머물며 법의학의 한 분야인 ‘유전자 감식법’을 공부했다.

황 교수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분야는 ‘법곤충학’. 이는 시신에 벌레가 생기는 단계를 연구해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방법으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의학의 중요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사건들의 진실이 밝혀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는 황 교수는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투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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