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사장들, 구조조정때문에 울고 웃고…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대우그룹의 위기가 수면 밑에 잠복해있던 지난해 11월. 김우중(金宇中)회장과 50명의 최고경영자가 참석한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날 모임은 계열사의 처리방향을 결정하는 ‘살생부 회의’.

‘총대’는 당시 구조조정본부를 이끌던 K사장이 멨다. K사장이 들고온 대형 나무판 한쪽에는 계열사 이름이,다른한쪽엔색테이프로 가린 ‘운명’이 적혀 있었다. K사장이 계열사의 운명이 적힌 테이프를 뗄 때마다 안도와 비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갑자기 책상을 치는 소리와 함께 ‘흥’하는 비웃음 소리가 회의장 한편에서 터져나왔다. 정리매각 쪽으로 가닥이 잡힌 통신부문 Y사장의 반발이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다음 테이프를 뜯어보자”는 다른 사장들의 만류로 해소됐다. 그러나 Y사장은 결국 사장단 인사탈락 대상에 올랐다.

한달쯤 뒤 대우전자 빅딜이 발표됐다. 성난 노조원들은 대우센터 빌딩 1층에서 농성을 벌였고 긴급 사장단회의가 열렸다. 그룹 맏형격인 S사장이 주재한 회의엔 ㈜대우 J사장, 전자의 C사장 등 최고경영자가 참석했다.

97년 인사때 상무에서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던 C사장은 “대우전자는 충분히 독자회생이 가능하다”며 경영권에 집착을 보였다. 그러자 그룹 자금흐름을 관리하는 J사장이 호통을 쳤다. “그룹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한테까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J사장의 강경한 입장에 C사장은 주춤했고 빅딜은 예정대로 추진됐다. 수구(水球)선수 출신으로 추진력이 남달랐던 C사장은 ‘노조와 그룹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다’는 비난을 받으며 경영진에서 밀려났다.

지난달 1일 대우는 사장단 50명을 17명으로 대거 줄였다. 예상대로 Y, C사장 등이 탈락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개인보증을 많이 섰던 K사장 등은 운좋게 살아남았다.

유화빅딜 협상이 본격화된 요즘 삼성종합화학 Y사장은 빅딜 무용론을 기자들에게 설파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본 미쓰이(三井)물산의 투자의도가 의심스럽다” “삼성 혼자서 독자회생할 수 있다”는 등이 그의 빅딜무용론의 근거. 삼성그룹은 당초 통합법인 대표로 Y사장을 천거했으나 현대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 자리는 기준(奇浚)전대림산업 전무에게 돌아갔다. 반면 통합후 역시 자리를 잃게 될 현대유화 유병하(兪炳昰)대표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더라도 통합을 해야 한다는 입장.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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