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술유출 재판 1심만 3년째… 노하우 다 뺏기고 나면 뭔 소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2일 0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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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 유출 범죄는 적발도 어렵지만, 범인을 찾더라도 이미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뒤인 경우가 많다. 재판이라도 빨리 마무리돼야 범죄자를 처벌하고 기업들도 피해 보상을 받을 텐데 몇 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많다. 처벌 수위까지 낮으니 ‘걸려도 남는 장사’다. 이런 사법 시스템으론 글로벌 첨단 기술 경쟁에 대응하기 어렵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 79명 중 35명(44.3%)은 기소 후 2년이 넘었다. 통상 형사 사건 1심 판결이 5∼8개월 만에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길다. 최종 판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형사재판을 질질 끌다 보니 나중에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옛날 기술이라며 가치가 낮게 평가돼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

굼벵이 판결이 반복되는 것은 관련 사건은 갈수록 늘어나고 복잡해지고 있는데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재판부는 소수인 데다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대만 등은 전문 법원을 통해 기술 유출 및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통합해 처리한다. 하지만 한국은 전문 법원이 없고 전담 재판부도 2년마다 순환해 전문성을 갖기 힘든 환경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판결도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최근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중 1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6.2%에 불과하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은 그대로이고, 기술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아 첨단 기술을 유출해도 가중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미국, 일본, 대만 등은 사실상 반역 행위에 준해 처벌한다. 신속하고 엄한 처벌이 이뤄져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첨단 기술을 지킬 수 있다.
#기술유출 재판#판결#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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