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어설픈 중도’ 안철수 정치의 패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4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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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반윤 가운데 오가며 정체성 흔들려
보수가치 분명한 기반 위에서 외연 넓혀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안철수 정치가 다시 벼랑 끝에 섰다. 압도적 인지도를 앞세워 국민의힘 당권을 쥔 뒤 대선으로 직행하려던 꿈이 무산돼서다. 국민의힘에 합류한 지 1년도 채 안 돼 100% 당원투표에서 거둔 23% 득표율은 만만치 않은 잠재력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와 주요 정당 대표를 지낸 화려한 이력에 비춰 보면 아쉬운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안철수는 전당대회 내내 친윤 김기현과 반윤 이준석계의 중간지대에 서 있었다. 스스로 ‘극중(極中)주의’라고 강조한 중도 노선을 구현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안철수의 중도 노선은 신선함보다는 친윤과 반윤을 넘나드는 오락가락 행보로 비쳤다. 캠페인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메시지의 일관성이 무너진 것이다.

3·8전대 시기도 중요한 변수였다. 정권 1년 차는 대통령의 시간이다. 일단 대통령을 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리는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야당이 역풍을 맞고, 세월호 사태 직격탄을 맞은 박근혜 정부가 지방선거에서 예상외로 선전한 것도 정권 1년 차 효과로 볼 수 있다. 정치 이력이 짧은 윤석열 정권의 지지 기반은 역대 보수 정권에 비해 약한 편이다. 그래도 당심 100% 투표에선 심판보다는 더 지켜보자는 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전대에서 중도 노선이 힘을 받기 어려웠던 이유다.

안철수 캠프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윤석열-안철수 연대’ 카드를 꺼냈다. ‘윤-안 연대’는 1997년 정권교체의 동력이 된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를 떠올리게 했다. 진보와 정통 보수 세력이 힘들게 손을 잡은 DJP연대는 보수 세력이 뭉친 3당 합당 구도를 뒤엎는 새판 짜기였다. 그래서 DJP연대는 장관 지분까지 나누는 DJP공동정부로 확대됐다. 그러나 ‘윤-안 연대’는 DJP연대처럼 정치지형을 뒤흔들 정도의 세력 재편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서로의 기대치는 너무 달랐다. 여기서 안철수 캠프와 대통령실은 다시 충돌한 것이다.

보수-진보 진영은 여론지형에서 변치 않는 상수다. 보수와 진보, 중도 지분은 대략 4 대 4 대 2 정도다. 극단적 진영 대결이 볼썽사납다고 해서 진영 간 긴장이라는 현실 정치를 외면해선 안 된다. 우선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자 세를 결집한 뒤 중원을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키던 제3지대 후보는 최종적으로 양강(兩强) 구도에서 탈락했다. 2017년 대선 초반 1, 2위를 다투던 안철수 후보는 끝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밀리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이 제3지대 독자 창당을 검토하다가 막판에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내걸고 총선 4연패의 늪에 빠진 영국 노동당을 살려냈다. 극좌적 노선을 걸었던 노동당의 상징을 붉은 깃발에서 붉은 장미로 바꾸는 등 과감한 당 혁신을 주도했다. 그러나 파격적인 변화의 이면에 가려진 인고의 시간을 잊어선 안 된다. 집권을 위해선 극좌 노선을 바꿔야 한다며 반대파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이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성공했기에 지지층 이탈 없이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었다. 안철수 정치가 이런 지난한 길을 걸어왔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중도 노선은 정치평론가가 할 일이지 현실 정치인의 영역은 아니다. 진보 진영에서 시작된 안철수 정치는 제3지대 정당을 거쳐 보수우파 진영에서 새 둥지를 마련했다. 더 이상 철수는 없어야 한다. 지금 디디고 있는 땅을 더 굳게 다져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안철수#어설픈 중도#국민의힘#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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