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겨야 할 민주화 礎石 4·19정신[기고/홍일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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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사실상 첫걸음이라고 할 4·19혁명 61주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일찍이 영국의 한 신문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혹평한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100여 신생국가 중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국가로 세계인들이 칭송하고 있다.

그 민주화의 문을 연 계기가 바로 1960년 4·19민주혁명이다. 4·19혁명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민주적 자각에서 우러난 민권의 승리였고, 불의와 타협해 온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일대 경종(警鐘)이었으며, 새 시대를 향한 젊은 지식인들의 사명감을 고취시킨 ‘의식의 대약진 운동’이었다.

그 4·19혁명에 직접 불을 댕긴 도화선(導火線)이 고려대 학생들의 ‘4·18의거’다. 3·15부정선거에 대한 지방 단위 고교생 차원의 산발적 항거를 단숨에 중앙무대로 끌어올리고,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폭발적인 범국민적 반정부 시위로 확산시켜 마침내 시민혁명-민권혁명의 성취를 이룩한 결정적 기폭제가 바로 고대 4·18의거였던 것이다.

그해 4월 18일 오후 1시.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이 자유당 정권의 폭정과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고대 4·18 선언문’을 채택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출해 연좌농성을 벌인 후, 학교로 돌아가던 중 각종 흉기를 든 정치깡패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는다. 다음 날인 4월 19일 아침, 피투성이가 된 수십 명의 고대생들이 길바닥에 쓰러진 현장을 신문들이 보도함으로써 일시에 온 국민을 격분시켜 마침내 4·19혁명의 큰 불길이 치솟게 된 것이다.

그날 고대 4·18의거의 중심에는 학생들의 의협심을 불러일으키고 분기를 탱천시킨 ‘고대 4·18 선언문’을 쓴 당시 고대신문 편집국장 석악(石岳) 박찬세 공(公)이 있었다.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오늘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한 반항의 봉화를 높이 들어야 하겠다.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 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고대 4·18 선언문 일부)

그는 이미 4·18의거 직전 고대신문 사설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 등으로 학생들의 의기(意氣)와 행동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대 55학번 동기이기도 한 석악이 6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우리 국내 상황이 보기에 따라서는 바로 61년 전 4·19 전야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에 잠든 그의 깊은 지혜와 높은 안목이 더욱 그립고 아쉬워진다. 61년 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열망했던 석악, 그리고 당시 동참했던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의 꿈이 오늘에 부활하여 혼돈의 시대를 헤매는 청년들의 앞길을 열어 가는 든든한 정신적 초석(礎石)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민주화#대한민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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