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이철희]아이 울음이 없는 세상, 희망의 노래도 사라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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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은 어떠할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인류의 마지막 아기가 태어난 지 18년째 접어든 2027년의 영국은 암울하다. 희망과 미래가 없는 사람들은 고통 없이 자살할 수 있는 약을 상비한다. 작년에 36만 명의 아기가 태어난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디스토피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가 줄어드는 속도는 예사롭지 않다. 신생아 수는 불과 반세기 만에 3분의 1로 감소했다. 출생아 수 36만 명은 통계청 중위추계 전망보다 18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장래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과거 출산율 하락의 영향으로 가임기 여성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2016년의 출산율이 유지되더라도 신생아 수는 2040년까지 27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만혼과 비혼이 늘면서 배우자가 있는 여성(유배우 여성)이 빠르게 감소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신생아 수를 감소시킨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지난 25년 동안 거의 일정한 속도로 떨어져 온 이 비율이 가까운 장래에 갑자기 반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과거 15년 동안 신생아 수가 45만 명 수준을 오르내리며 유지된 것은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이 높아져서 다른 효과들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부터 유배우 출산율도 정체 내지 감소하고 있어서 더 빠른 출생아 수 감소가 우려된다.

신생아 수의 가파른 감소는 희망이 엷어진 사회의 징후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젊은이와 아동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일자리, 주거, 보육, 교육 여건이 양적·질적으로 개선된다면 결혼과 출산의 장애를 완화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더 생산적인 인력으로 길러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가정과 사회에서 보다 철저하게 양성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가사와 돌봄에서의 ‘독박’과 결혼·출산으로 인한 커리어의 불이익이 지속되는 한 가정과 자녀가 행복의 원천이 되기 어렵다. 셋째,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어온 삶의 패러다임을 성찰하고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쉼이 없는 경쟁사회에 내던져질 것이 안쓰러워 아이 낳기가 꺼려지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가. 모두 어려운 일들이다. 막대한 재원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양보와 희생이 요구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값비싼 미술작품들을 보며 냉소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십 년 후 누가 있어 이것을 볼 것인가?” 미래가 없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일까. 영화 속 인물들은 기적적으로 태어난 불법 이민자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2018년의 한국 사회,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열어갈 미래의 소중함을 깨닫기에 36만은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일까?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산율#저출산#신생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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