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극한 체험, 평창 올림픽 개회식 관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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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헉. 예상을 뛰어넘는 추위에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나왔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장과 가까운 고속철도(KTX) 진부역에 도착한 건 15일 오전 11시경이었다. 영상 2도였지만 초속 5m의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3도였다.

오후 2시. 온도는 0도가 됐다. 바람은 초속 7m로 강해졌고, 체감온도는 영하 6도까지 떨어졌다. 한파와 강풍 때문에 야외에서 5분을 서 있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새 발의 피’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평창 올림픽이 개막하는 내년 2월 9일 오후 8시 평창지역 기온은 영하 7.7도로 예상된다. 체감온도는 영하 14도까지 내려간다. 겨우 늦가을 평창 날씨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평창 올림픽의 가장 큰 걱정은 시설도 성적도 아닌 날씨”라는 조직위 고위 관계자의 말이 새삼 실감 났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은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 동안 열린다. 이에 앞서 개막 공연은 두 시간 전인 6시부터 펼쳐진다. 입장에도 시간이 걸리고, 개회식이 끝난 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데도 2, 3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꼼짝없이 7시간가량 평창의 혹한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조직위는 당초 이 같은 사태를 우려해 개·폐회식장에 지붕을 씌우고 난방시설도 설치하려 했다. 하지만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조직위는 2015년 3월 지붕과 난방시설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총사업비가 확정되고 나서도 지붕 설치를 검토했으나 임시 시설로 짓다 보니 하부 구조가 취약해져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개·폐회식장은 그렇게 지붕 없는 ‘오픈형’으로 지어졌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개·폐회식 공연을 위한 무대 설치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차라리 그 돈을 보태 처음부터 지붕을 씌웠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 때 벌어진 정부 부처들과 조직위, 강원도 간의 엇박자로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돼 버렸다.

대책은 마련되어 있다. 차가운 북서풍을 차단하기 위한 방풍막을 설치하고, 일반 관람객 좌석 주변에 히터 40대를 설치한다. 또한 3만5000명의 관중 전원에게 일반 우의, 무릎 담요, 핫팩 방석, 손발 핫팩 등의 방한용품 5종 세트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평창의 혹한을 견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달 초 올림픽 개막 100일을 앞두고 이곳에서 열린 ‘드림콘서트’ 때 6명의 저체온증 환자가 나왔다. 오후 8시 온도는 영상 3.4도였지만 강풍 때문에 관중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다. 조직위 관계자는 “옷을 두껍게 입고 오라고 사전에 홍보했지만, 가을 날씨라 여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온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개·폐회식 날씨 대책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날 평창 날씨가 춥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알아서 중무장을 한 채 행사장에 오는 것이다.

한 조직위 관계자는 “에베레스트산 등반을 한다는 마음으로 온몸을 철저히 감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평생 한 번 맞을까 말까 한 체험 기회다. 다만 ‘극한 체험’임을 알고 가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평창 올림픽 난방 시설#평창 올림픽의 가장 큰 걱정은 시설도 성적도 아닌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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