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원장이 민간기업 인사고과까지 간섭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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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어제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다”며 대기업 공익재단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기업 전문경영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지주회사의 수익 구조가 도입 취지에 맞는지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의 전략이 시장과 사회의 반응으로부터 지나치게 괴리돼서는 안 된다”며 “하도급 거래에서 분쟁을 일으킨 직원에게 페널티를 주는 식으로 임해 달라”고 인사고과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조급한 재벌 개혁은 실패를 자초한다”던 김 위원장이 대기업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과 관련 있을 것이다. 재벌 중심 경제가 우리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비판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기업이 공익법인을 이용해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실태를 차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시민단체 등에선 공공 이익을 위해 설립된 대기업 공익재단이 오너 일가의 상속·증여세를 낮추기 위해 이용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대기업 공익재단의 실태는 이미 온라인에 투명하게 공시되고 있다. 공정위가 무리한 조사로 압박할 경우 대기업은 공익재단을 접거나 국내 공익활동을 축소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이 주 수입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브랜드 사용료나 건물 임대료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비판한 것도 경영권 침해 소지가 있다. 2010년 브랜드 사용료를 안 받아 매출을 누락시켰다는 이유로 법인세를 추징당한 기업도 있는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민간기업의 고유권한인 인사고과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황제 경영’이나 경영비리는 시정돼야 마땅하되 인사 실패는 실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 책임은 경영자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민간기업 인사를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관치(官治)’ 행위는 채용비리 뺨치는 월권이자 경영 간섭이다.

김 위원장은 “칼춤 추는 듯 (재벌 개혁에) 접근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제 김 위원장의 말을 들으면 새로 만든 기업집단국을 내세워 대기업을 상대로 칼춤을 추려는 듯하다. 공정위가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일감을 몰아줬다며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서 9월 패소하자 김 위원장은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고 자성한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에 따라 춤추는 규제 때문에 기업 투자와 경영이 위축된 상황이다. ‘재벌 저격수’ 김 위원장의 조바심이 자칫 한국경제까지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까 걱정스럽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황제 경영#재벌 저격수#교각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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