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국민생활 전부를 책임지겠다는 국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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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황혼이혼, 졸혼… 아동노인 학대에 자살까지 우리 사회 가족의 위기
문제 해결하기 위해 국가 개입 불가피하지만 국가가 모두 책임질 순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가족의 뒷짐 초래해 오히려 가족붕괴 부채질할 수도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가족은 부모 자식 자녀 등의 관계로 맺어진 자연발생적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가족보다 좀 넓은 의미의 배우자, 혈족 및 인척 관계를 의미하는 친족이 있고, 가족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집단으로서의 가정이 있다. 현실적으로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 개념으로서 가구, 소비의 주체로서 경제적 단위의 가계 개념도 있다. 인류의 기원과 거의 함께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의 범주와 역할은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현대에 들어서 법령과 제도가 뒷받침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

대가족이 소가족이나 핵가족으로 바뀐 것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사실상 가족 개념이 없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7.9%인 540만 가구로 증가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학업이나 직장 이동으로 혼자 살 수밖에 없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홀로 독립하는 20, 30대가 늘어나고 있고 자녀의 독립과 배우자의 사망으로 홀로 사는 홀몸노인이 증가하고 있다.


‘혼밥’ ‘혼술’ 같은 용어가 생겨나는가 하면, 소포장 상품이 늘어나면서 대형마트가 위축되고 편의점이 상대적으로 흥업하고 있다. 물론 1인 가구 혹은 2인 가구의 비중 증대가 가족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살고 있지 않을 따름이지 혈연에 기초한 가족이라는 범주 속에서 경제적, 정서적으로 서로 의존하는 삶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 위기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혼인건수 감소와 출산율 저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3만2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0.9% 감소하여 2000년 인구동향 집계 이후 8월 신생아 수로는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고, 혼인건수 역시 2만100건으로 12.6% 줄었다.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혼인으로 생성되고 출산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지금은 맺어진 가족도 흩어지고 있다. 높은 이혼율은 말할 것도 없고 ‘황혼이혼’ ‘졸혼’이라는 법령에도 없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오르내린다. 가족공동체 감소는 국가 전체로서의 인구 감소와 함께 사회 경제 전반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지만 그 대응은 쉽지 않다. 게다가 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해도 불안한 가정도 늘고 있어 문제다. 아동과 노인에게 가해지는 반인륜적 학대와 폭행, 극단적인 살해 그리고 청소년 및 노인 자살 등 가족공동체의 붕괴를 알리는 뉴스가 줄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위기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국가의 기능이 불가피하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이 없거나 부양능력이 없을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제가 생계 등을 대신해 주고, 부모를 모셔야 할 자녀를 대신해서 국가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제를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해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제는 피부양자의 범주에서 개별 보험료의 추가 부담 없이 광범한 의료보장이 가능하게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는 치매나 중풍으로 스스로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을 보살펴 자칫 가정이 파탄될 수 있는 위험도 막아준다. 국가책임보육제의 시행으로 5세까지 아동의 육아비용 상당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회나 국가가 나서는 것은 아직 2차적이다. 원칙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이 먼저 최선을 다하고 이것이 어려울 때 국가가 나서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러한 역할관계에서 주객이 전도돼 국가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지고 가족은 뒷짐을 지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와 같이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 단계에 이르면 가족 책임보다는 국가 책임이 더 무거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으로 올려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10%를 조금 넘어선 단계에 있다. 또한 이들 국가는 개인·가족과 사회·국가 간 역할 분담에 대한 사회적 도덕률이 긴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돼 있다.

최근 국가가 국민생활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일견 고맙기는 하지만 실현 가능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더구나 이러한 정부 입장이 도리어 가족붕괴 현상을 더 가속시키지 않을까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가족은 단순한 경제적 부양관계 이전에 치열한 사회관계에서 벗어나 안식할 수 있는 요람으로 지켜 나가야 할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지켜 나가기 위해 국가가 당연히 나서야 하지만 너무 지나쳐서도 안 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가족#1인 가구#가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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