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30대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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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1977년생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5개월 만에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1986년생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탄생했다. 내년 5월 총선에서 집권당으로 유력한 이탈리아 ‘오성운동’ 대표는 쿠르츠와 동갑이다. 유럽만의 일도 아니다. 뉴질랜드에는 37세 여성 재신다 아던 노동당 대표가 총리가 됐다.

정당도 30대 대표들의 성적표가 화려하다. 38세 여성 알리체 바이델 공동대표는 지난달 총선에서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을 2차대전 이후 처음 의회에 진입시켰고, 38세 자유민주당 대표 크리스티안 린트너는 4년 전 의회 진출에 실패한 당을 80석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30대 애송이가 무슨 나라를 이끈단 말인가. 기성 정치가 싫다고 순진한 결정들을 하고 있구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유럽 선진국의 바람이 광풍 수준이다.


이들은 당내 역학 구도나 노선, 과거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 국민 여론이 판단의 제일 기준이다. 그렇다 보니 실리적이고 시대 흐름과 국민 여론 변화에 대처가 빠르다. 자유로운 교육을 받아 토론에도 능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예전만 못하지만 노동개혁으로 경제에 활력을 주고 유럽연합(EU) 개혁에 앞장서며 국제사회에서 ‘늙은 수탉’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프랑스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물론 물리적인 나이가 사고나 행동의 나이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젊음보다 경륜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30대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여론에 민감하고 실리만 추구하다 보니 장기적인 국가 안목보다는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부작용도 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시장(39)처럼 혜성같이 나타나 당선된 뒤 인사 잡음과 부정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도자도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는 좀 심하다.

대통령 64세, 민주당 추미애 59세, 자유한국당 홍준표 63세, 국민의당 안철수 55세, 바른정당 주호영 권한대행 57세, 정의당 이정미 대표 51세. 예외 없이 50, 60대다. 장관으로 넓혀봐도 30대는 한 명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차기 정치 지도자로 각광받는 30대 정치인조차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30대 국가 지도자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마크롱은 36세에 경제장관을 지냈고, 쿠르츠는 27세에 외교장관을 맡았다. 쿠르츠는 22세에 처음 정치에 발을 내디딘 뒤 10년 동안 시의원, 의원, 장관을 거치며 속성으로 경력을 쌓았다.

프랑스 국회의원 577명 중 20, 30대는 무려 146명이다. 최연소 국회의원 나이는 23세이다. 능력 있는 젊은이에게 국가 경영의 기회를 주며 차세대 지도자로 키우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은 이제 와서 “당에 젊은 인재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당에는 39세의 나이로 영국 보수당을 구한 데이비드 캐머런도, ‘뉴 국민당’ 기치를 내걸고 5개월 만에 1당으로 끌어올린 31세 쿠르츠도 없다.

이는 그동안 젊은 지도자에게 무심했던 ‘업보’라고 봐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단 한 명의 30대 장관이 없었다. 2000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 시절 발탁된 정치인 남경필 원희룡 오세훈 나경원이 아직도 ‘젊은 피’ 노릇을 한다. 이들을 대체할 만한 진짜 ‘젊은 피’가 없었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40세 미만은 대통령에 출마도 할 수 없는 헌법 67조부터 바꿔야 한다. 30대가 나이가 어려 지도자가 될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국가라니 해외 토픽감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30대 정치인#30대 대통령#당에 젊은 인재가 없다#헌법 6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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