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석호]유엔도 군사제재 나설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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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신석호 국제부장
북한 외교관 태영호가 지난해 탈북 전까지 근무했던 영국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대서양 동맹’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다른 길을 걸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진전되는 중에도 미국과 한국 등에 전략적인 포용을 주문할 때가 많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유럽 강국들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면서 미국을 견제하는 태도였다. 북한 문제는 유럽인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인 듯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대화와 협상”을 들고나오며 국제사회의 결기를 녹이는 유럽을 설득하는 것은 한미일 공조 강화와 차원이 다른 한국 외교의 과제였다. 역대 외교장관들은 유엔 등 다자외교 무대와 양자회담에서 유럽 외교장관들을 만나 “그렇게 뒷짐만 지고 있지 마세요. 북핵이 당신 나라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득하곤 했다.

한국 외교의 오랜 숙제를 해결해 준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이었다. 올해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보도’에 등장한 ‘김정은의 입’ 리춘희 아나운서는 “(이번 발사 성공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그 어느 지역도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일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간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아닐 테고 남은 곳은 유럽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가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1만 km짜리 ICBM은 방향만 틀어 발사하면 영국 런던에 떨어질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군축회의(CD)에 참석한 북한 대표들은 유럽 대표들에게 같은 협박을 전했다고 한다.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전통적으로 대화를 강조하던 유럽 각국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전후로 강경한 대북 비난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김정은의 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 3일 ICBM에 장착할 수소탄 핵실험에서 성공했다고 밝히자 유럽 각국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과 독일, 덴마크 스페인 등은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강력한 새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통화를 하고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유럽마저 북한에 등을 돌린 최근 상황은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한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 기구인 유엔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완성을 막기 위해 유엔 제재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4일 긴급회의를 연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비군사적 제재’라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엔 헌장 7장 41조가 규정한 경제제재 등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비군사적 제재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명될 경우’에 대비해 헌장은 ‘군사적 제재’의 길을 열어놓았다. 42조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해 가입국의 육해공군을 이용한 시위나 봉쇄, 작전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유엔은 불량 회원국(북한)을 제명하거나 자격을 정지할 수도 있다.

결과론이지만 지금까지의 비군사적 제재는 북한의 ‘핵폭주’를 막지 못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대안인 군사적 제재와 북한 제명 등의 카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두 나라가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대북 원유 공급 차단을 끝내 거부한다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는 ‘그럼 군사제재 하자’고 압박해야 한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유엔의 군사제재#북한 외교관 태영호#집단안보 기구#북핵#북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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