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고향 투표제라는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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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주지사 E 게리는 상원선거법 개정안에서 소속당인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분할했다. 그 모양이 샐러맨더(salamander·도롱뇽)와 같다고 하여 상대 당에서 게리의 이름을 붙여 게리맨더라고 야유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선거구 획정을 하면서 원칙을 어기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리 떼고 저리 붙이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은 우리 국회의 선거구 협상 때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전남 장흥-강진-영암)이 이른바 ‘고향투표제’ 법안을 발의했다. 유권자가 주민등록지와 관계없이 출생지(고향)나 가족관계등록지(본적)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대도시의 출향 인사들을 끌어오면 선거구를 합치지 않고도 인구 부족으로 지역구가 없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된다. 통폐합 대상이 많은 농촌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 나돌던 아이디어가 정식 법안으로 제출된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그제 첫 회의를 열고 내년 4·13총선을 앞둔 선거구 획정 논의에 들어감에 따라 인구 미달로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어촌 출신 여야 의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횡성)은 선거구 면적이 전체 선거구 평균 면적의 2배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개정안을 냈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2 대 1을 넘으면 ‘표의 등가성’에 위배돼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면적 기준’을 내세워 농어촌 지역구의 통폐합을 막아 보려는 시도다.

▷인구만을 기준으로 농어촌 지역구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면 역사와 전통이 다른 지역의 대표성이 상실·왜곡될 수 있다면서 ‘농어촌 주권 지키기 모임’을 만든 의원들도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면 농어촌 지역도 의원 수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게리맨더링도 모자라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인구수를 산정토록 돼 있는 공직선거법의 대원칙까지 허무는 꼼수를 동원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고향 투표제#꼼수#게리맨더링#고향투표제#면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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