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野, “국감에서 회장님 빼 달라”는 로비 그리도 받고 싶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는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안건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공전을 거듭하다 결국 파행으로 마감했다. 파행은 어제 오전까지 이어졌다.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불러내려는 야당과 막으려는 여당은 서로를 “전경련의 하수인” “민주노총의 2중대”라고 비난했다.

환노위 국감에서 야당이 요청한 증인 35명 중 기업인은 전체의 66%인 23명이다. ‘국정 감사’가 아니라 ‘기업 감사’인 듯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같은 대기업 총수들이 포함됐다. 야당은 근로자 불법 파견, 환경오염, 산업재해 문제 등을 따지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감에서 다룰 사안인지, 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총수를 증인으로 부를 까닭이 있는지 의문이다. 현안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실무에 밝은 담당 임원을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국감에 기업인을 부를 때는 법 규정에 맞고 정부 예산이나 국정과 관련된 사안 등 꼭 필요한 경우에 국한해야 한다. 노사 분규는 기본적으로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할 일이다. ‘정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은데도 야당이 증인으로 요청한 기업인 23명 중 노사분규를 이유로 부른 사람은 16명에 이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의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증인 신청은 한 명도 하지 않고 피감기관과 기업의 7만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받은 자료를 토대로 국감을 준비했다. “기업인이나 권력자를 질책해 언론에 알려지고 하는 것보다는, 현장의 정책 제안과 제보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홍 의원은 말했다. 환노위 야당 의원들에게도 필요한 자세다.

어느 대기업 임원은 “총수가 국회에 증인으로 불려가지 않게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하는 것이 임원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전했다. 기업의 로비 과정에서 뒷거래와 정경유착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원들이 기업 총수 호출을 국감의 준비 부족을 만회하기 위한 이벤트로 삼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감은 정책을 다루는 곳이지 피의자를 신문하는 법정도, 로비나 정치 투쟁의 장(場)도 아니다. 막말하기, 호통 치기, 망신주기 같은 구태 국감도 청산돼야 하지만 기업인 증인 채택을 놓고 연례행사처럼 싸움질하는 국감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국정감사#국감#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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