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꼬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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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이런 역적 같은/이런 강도 같은 참변 앞에서/과연 이 나라가 나라 꼬라지인가 물었습니다…’(고은, 이름짓지 못한 시)

세월호 참사 직후의 분노가 그대로 배어 있다. 분노와 슬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주구장창’ 놀기만 하는 국회와 정치의 ‘꼬라지’ 때문이다.

꼬라지. 점잖은 표현은 아니지만 심기가 몹시 불편할 때 튀어나오는 말이다. 꼴, 꼬락서니보다 부정적 감정이 훨씬 강하다. 그런데 이 말, 표준어가 아니다. 꼬락서니의 경기 경상 전남 충청 지역의 방언이고, ‘성깔’의 전남 지역 사투리다. 이상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고 있고, 언중은 꼴과 꼬락서니, 꼬라지를 느낌에 따라 잘 구분해 쓰고 있는데 말이다. 꼬라지를 더이상 방언 취급하는 데 찬성할 수 없는 이유다.

‘뜬금없다’와 ‘간추리다’는 어떤가. 뜬금없다는 호남 방언이었고, 간추리다도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쓰던 말이다. 그런데 두 단어는 당당히 표제어로 올라 있다. 뜬금없다의 대체어로 ‘느닷없다’를 고집했지만 적당한 선에서 접었기 때문이다. 간추리다도 쓰는 사람이 늘자 자연스럽게 표제어가 됐다.

꼬라지는 형태로도 문제가 없다. ‘목’에 접미사 ‘아지’가 붙어 ‘모가지’가 되고, ‘박’에 아지가 붙어 바가지가 되듯, 꼴에 아지가 붙어 꼬라지가 되는 건 당연하다.

‘주구장창’이라는 말도 논란거리다. ‘주구장창 술만 마신다’ ‘주구장창 떠들기만 한다’처럼 많은 사람이 즐겨 쓰지만 유래가 불분명하다. 장창은 ‘늘’을 뜻하는 황해도 사투리이긴 하지만 주구라는 말에 ‘잇달아’ ‘계속해서’라는 의미는 없다. 이 바람에 아직까지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럼 표준어는 뭘까.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고 연달아’를 뜻하는 ‘주야장천(晝夜長川)’이다. 시냇물이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뜻에서 나왔다. 의미는 알겠는데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어원은 모르지만 열에 아홉은 쓰는 주구장창과 사전 속에서 박제가 된 ‘주야장천’ 중 어느 것을 표준어로 삼아야 할까. 말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퍼져나가게 마련이다. 지금은 주구장창이 언중의 입말이라 하겠다. 주구장창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는 걸 검토할 때가 됐다.

국회의 꼴이 안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꼴을 넘어 ‘꼬락서니’ ‘꼬라지’ 소리까지 듣는다면 문제다. 그런 소리를 듣는 국회는 영 꼴불견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꼬라지#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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