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김상곤 공짜 버스의 종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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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조그만 대학도시 채플힐에는 공짜 버스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중심으로 채플힐과 카버러라는 지역을 오가는 버스다. 시에서 30여 개 노선을 운영한다. 몇 해 전 이 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연수한 기자는 공짜 버스 덕을 톡톡히 봤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진짜 공짜였다. 버스 탈 때 신분증도, 학생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버스 회사이자 버스 이름인 ‘채플힐 교통(Chapel Hill Transit)’은 시에서 운영한다. 보험이 없으면 맹장 수술에 1만 달러를 내야 하는 비정한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이런 공짜가 있다니….

미국에서 채플힐처럼 버스를 공짜로 태워주는 곳은 드물다. 뉴욕이나 워싱턴 같은 대도시에선 전철 요금이 한국의 3배다. 출퇴근 시간에는 낮 시간대보다 50% 더 비싸다. 채플힐에서 공짜 버스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인구 6만 명의 조그만 도시의 살림 형편이 좋은 데다 세금을 기가 막히게 걷어가기 때문이다.

채플힐의 교통경찰은 악명이 높다. 대학가 인근 최고 속도 시속 35마일(약 56km/h) 제한구역에서 조금이라도 과속을 하면 바로 경찰차가 따라붙는다. 교통경찰은 ‘POLICE’라고 찍힌 경찰차만 아니라 일반 차량에도 타고 있다가 과속을 하거나 신호를 위반하면 귀신같이 잡아낸다.

딱지도 현장에서 주지 않고 법원에 출석하라고 한다. 법원에 출두하면 법원사용료 150달러는 무조건 내야 하고 벌금을 수백 달러 매긴다. 변호사를 쓰면 변호사 비용까지, 한번 걸리면 이래저래 500달러를 넘기 십상이다. 장애인 주차장에 함부로 차를 댔다간 벌금이 최소 300달러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교통범법자들이 즉심판결을 받으려고 몰려들어 법원 문이 미어터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벌금이 장난이 아니었다. 버스 요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금과 법원사용료로 물고 난 뒤에야 공짜 버스가 전혀 공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공짜 버스 공약을 내놨다가 한발 물러섰다. 모두 공짜로 태워줄 것처럼 해놓고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초·중학생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경기도민 1250만 명이 공짜 버스를 타려면 연간 운영비만 1조9000억 원이 든다. 별도로 경기도 버스 1만3000대를 경기도가 인수하려면 수조 원이 필요하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천문학적 돈이 나오지 않는 한 공짜 버스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이즈 마케팅’은 성공했다. 사실 버스 공영화 문제는 원혜영 민주당 의원에게 ‘저작권’이 있다. 원 의원은 중앙정부와 경기도가 경기도 버스회사에 매년 지원하는 4000억 원을 교통 취약계층을 위해 쓰자는 아이디어를 갖고 고민했다. 그런데 김상곤이 공짜 버스 얘기를 먼저 꺼내 한순간에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어버렸다. 타이밍을 놓친 원혜영의 버스 공영화 얘기는 지금 흔적도 없다.

경기도민들이 3∼4년 뒤 공짜 버스를, 그것도 러시아워를 피한 시간에라도 즐기려면 꼼짝없이 김상곤을 찍어야 할 판이다. 김상곤이 당선되면 임기 마지막 해인 2018년 다시 공짜 버스 공약을 내놓을 게 분명하다. 재선만 되면 이번엔 진짜 공짜 버스를 태워주겠노라고. 공짜 버스로 2번이나 우려먹을 수 있다.

그를 보면 2002년 대선 막바지에 행정수도 이전을 승부수로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노 후보는 이 공약으로 충청 표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고 대통령이 됐다. 행정수도 이전은 나라 살림에 두고두고 짐이 됐지만 선거에선 톡톡히 남은 장사였다. 노무현의 어두운 그림자가 김상곤에게서 어른거린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교통을 내건 김상곤의 공짜 시리즈의 끝은 어디인가.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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