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태원 징역 4년 확정은 “재벌비리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대법원이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SK그룹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 3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하자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 재계 서열 3위인 SK의 총수 최 회장이 받은 징역 4년은 그동안 사법 처리된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형량 가운데 가장 무겁다. 주요 그룹 총수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실형이 확정된 것도 전례가 드물다.

최 회장은 그룹 계열사 자금 465억 원을 해외로 빼돌려 선물(先物) 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변호인들은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상고심은 하급심 판결의 법률 적용과 해석이 적절한지를 다루기 때문에 징역 10년 이하의 형량인 경우 형량을 줄이는 선고는 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을 불식하고 기업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양형(量刑)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법원은 횡령·배임 범죄의 경우 2009년 하반기 96.7%, 2010년 94.3%의 양형 준수율을 보이고 있다. 양형이란 선고할 형량의 기준을 미리 정해 놓는 일이다. 횡령 범죄 등에 대해 높은 준수율을 보인 것은 유전무죄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재판부가 경제민주화 등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대기업이라고 해서 더 가혹하게 처벌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경영에서 총수의 영향력이 큰 대기업은 총수 부재(不在) 상태가 길어지면 경영 공백과 경영 차질을 빚을 수 있다. SK그룹도 최 회장이 수감된 뒤 신규 사업 진출과 인수합병 등 중대한 경영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실형 확정이 회사에는 위기일 수 있으나 중소기업도, 구멍가게도 아닌 만큼 전문 경영인들을 중심으로 그룹의 경쟁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기업인 비리 사건이 불거지면 재계는 관행처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달라”며 선처를 호소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형사 책임을 경감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 데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판단은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이어졌다. 기업인들은 기업 비리에 대한 관용을 더는 기대하지 말고 준법경영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불필요한 기업 규제는 반드시 들어내야 하지만 ‘경제에 기여한 공’ 때문에 재벌 총수의 불법과 탈법까지 봐주고 넘어가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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