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정상’과 ‘비정상’의 국제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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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올해 세계 국제정치학계는 큰 별을 잃었다. 5월 케네스 왈츠 선생이 향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이다. 그가 1959년에 출간한 ‘인간과 국가와 전쟁’이란 책은 많은 영재를 매료시켜 현대 국제정치학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리고 1979년에 출간한 ‘국제정치이론’은 전 세계 모든 대학 국제정치학 강의에서 필수교재가 됐다.

필자도 그에게 매료되어 국제정치학을 업(業)으로 택하고 1984년 미국 유학에 나섰다. 과연 미국의 국제정치학 교육은 당시 한국과 크게 달랐다. 통계학과 과학철학이 필수과목이었다.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세 가지 주장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패러다임, 정상과학(normal science), 그리고 진화생물학 같은 학문의 진보과정이다.

패러다임이란 특정 학문 분야의 대표이론이다. 그것은 그 분야 학자들의 세계관과 같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를 정한다. 그것을 벗어난 현상은 아예 연구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학문 분야가 패러다임을 가진 것은 아니고 그것을 가질 때 정상과학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정상과학 분야의 행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연구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주제의 본질적 중요성이 아니다. 연구의 성과를 결정하는 것도 연구자 본연의 능력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인간적, 사회적 관계다. 그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바로 패러다임에 대한 신봉이고 그것을 의심하면 소위 ‘왕따’가 된다.

그렇다 보니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정상과학에서 학문적 진보란, 큰 그림에서 보면 사소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는 선생, 선배의 연구 위에 새로운 연구를 축적한다고 믿겠지만, 문제 설정이 편협하고 성과도 미미하여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학문의 진보는 돌연변이와 같은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의 틀을 타파할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과학‘혁명’이다.

같은 학기 읽은 교재 중 하나는 국제정치학이 ‘정상과학’의 수준에 이르러 누적적 진보를 이루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기고자의 일부는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평가했다. 일부는 ‘아쉽게도’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어린 안목이지만 뭔가 이상했다. 필자가 읽은 바로 ‘정상과학’이란 이루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었고 못 이뤘다고 아쉬워할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문이 그처럼 편협하고 진보가 그처럼 사소하다면 정상과학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로부터 근 30년이 흘렀다. 이제 와서 누가 필자에게 물으면 서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이제 국제정치학은 정상과학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국제정치학이 진보했는가? 글쎄.

현대 국제정치학의 패러다임은 왈츠 선생이 주장한 구조적 현실주의다.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고 그들 사이의 약속을 보증할 세계정부가 없는, 소위 국제무정부 상태에서 펼쳐지는 것이 국제정치다. 그 속에서 국가들은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안으로 질서를, 밖으로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니라면 ‘비정상’이다.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2006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내심으로 드물게 장수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본받고 겉으로 ‘정상국가’를 꿈꾸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 같은 행보는 가뜩이나 싸늘한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찬물을 끼얹을 게 틀림없다.

한때 개발협력국가, 평화애호국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했던 일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정상’국가를 추구하게 한 것이 무엇일까?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담론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혹시, 왈츠의 주장을 금과옥조로 알고 그 속에서 작은 퍼즐을 찾아 따지며 지지고 볶아온 오늘날의 국제정치학은 아닌가.

그렇다면 국제정치학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국제정치학의 연구 대상은 생명이 없는 물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회현상이다. 국제정치학 연구 자체도 그 움직임의 하나다. 스승의 가르침에 압도되면 학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학문은 교조적으로 되며 실천은 퇴행한다.

중국 선종불교를 일으킨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고 질타했다. 왈츠가 죽어야 국제정치학이 산다. 학문이 살아야 현실을 이끌 수 있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국제정치학#케네스 왈츠#정상과학#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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