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벤치클리어링과 동업자 정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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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필자는 3형제 중 둘째다. 어렸을 때 형제 중 누가 남한테 맞거나 물건을 빼앗기면 응징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갔다. 스포츠 용어로 일종의 ‘벤치클리어링’이었다. 형제는 용감했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동네 형에게도 덤벼들었다. 물론 싸움 초반에는 덩치가 훨씬 좋은 동네 형이 휘두른 주먹에 우리 형제의 입술과 코피가 먼저 터졌다. 하지만 수적인 절대 우세로 ‘안씨 3형제’는 줄곧 완승을 거뒀다.

야구와 아이스하키 등 단체 스포츠 경기에서 벤치클리어링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야구는 한 게임에 몇 번씩이나 발생하기도 한다. 시속 150km가 넘는 빈볼(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볼)은 생명까지도 위협해 선수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벤치클리어링의 본질은 두 당사자의 싸움을 말리는 것이다. 하지만 동업자 정신을 저버린 악의적 행동이 나왔을 땐 동료 선수도 덩달아 흥분해 종종 집단 난투극으로 확대된다.

이때 단체 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비참가자’에게 벌금을 물리는 팀도 있다. 다만 부상 선수와 다음 날 선발 투수에게는 열외가 용인된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LA 다저스)도 몇 차례 벤치클리어링에 참여했고 한 차례 열외 케이스가 있었다.

최근 메이저리그 밀워키-애틀랜타 경기에선 빈볼 또는 위협구가 아닌 독특한 이유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밀워키 타자가 홈런을 친 직후 1루 쪽으로 곧바로 뛰어가지 않고 타석에서 한동안 타구를 바라본 것이 상대팀 투수를 조롱한 것으로 비쳐 애틀랜타 선수들의 심기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야구에는 불문율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도루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 너무 튀는 홈런 세리머니를 했다가는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감수해야 한다.

얼마 전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직구 헤드샷(실제로 머리를 맞힌 볼)’이 이슈가 됐다. 모 감독은 고의성 유무와 상관없이 투수를 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볼과 헤드샷의 경우 한국과 미국은 주심이 한두 차례 경고한 뒤 퇴장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일본은 볼이 타자의 헬멧에 맞으면 사전 경고 없이 그 투수는 무조건 퇴장이다. 변화구를 던지려다가 손에서 미끄러져 아리랑 볼로 헬멧을 가볍게 ‘통’ 맞힌 경우에도 예외 없이 퇴장당하니 투수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야구는 물론이고 장비를 이용하고 신체 접촉이 많은 종목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 필드하키에서는 볼을 다룰 때 스틱을 어깨보다 높게 들어 올리는 ‘하이 스틱’은 위험한 동작으로 간주해 반칙을 선언하고, 상대 팀에 프리 히트를 준다. 축구에서도 헤딩하려는 상대 선수 머리 쪽으로 발을 높이 들면 축구화가 머리에 실제로 닿지 않았어도 휘슬이 울린다.

동업자 정신은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공멸(共滅)을 부를 뿐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동업자 정신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대중문화 평론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트로트 가수 송대관의 라이벌은 태진아가 아니다. 발라드 가수 이승철이다.” 대중음악의 대세가 발라드가 되면 트로트 가수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동업자가 잘나가면 시기하지 말고 오히려 반기자. 그 ‘아이템’이 시장에서 통한다는 것이니 벤치마킹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벤치클리어링#류현진#야구#직구 헤드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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