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대통령과 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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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문화가 번성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세종 시대와 함께 영조 정조 때를 들 수 있다. 서울 청계천에 벽화로 재현되어 있는 정조의 화성 행차 그림은 표현기법이나 완성도에서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같은 시기 유럽 중국에서 만든 기록화와 비교해 볼 때도 손색이 없다.

▷영조와 정조의 공통점은 모두 대(大)학자였다는 점이다. 영조는 신하들과 토론할 때 주류 학문인 성리학에 무게를 두면서도 이전 군주들이 꺼렸던 진보적 사상까지 폭넓게 다뤘다. 정조가 남긴 저술인 홍재전서는 184권 100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이다. 두 군주는 예술적 안목도 탁월했다. 정조가 사직단에서 제례를 올릴 때의 일화다. 정조는 제례악이 연주되자 신하를 불러 “음악이 이상하다”며 사정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연주해야 할 음(音)을 빠뜨리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조선의 르네상스는 통치자의 문화적 관심과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 대통령’이 탄생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 분야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십상이고, 잘못 문화행사에 참석했다가는 구설에 오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9월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를 보러 갔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 뮤지컬 ‘영웅’에 갔다가 비판에 직면했다. 노 전 대통령이 관람 중일 때는 태풍이 강타한 시점이었고, 이 전 대통령은 구제역 파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이런 우려나, 스스로 문화를 모르는 탓에 대통령의 문화행사 참석은 드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서울국제도서전을 참관했다. 5월 4일 숭례문 복원 기념식에 이어 두 번째 문화행사 나들이였다. 박근혜정부가 ‘문화 융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앞으로 박 대통령이 얼마나 문화 분야를 챙길지는 미지수다. 문화 소비는 심리적 요소가 강하다.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마케팅보다는 관객의 입소문에 의해 탄생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남들이 많이 봤다는 영화에, 힘 있는 사람이 읽었다는 책에 대중은 관심을 갖는다. 국력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는 문화를 활성화하려면 대통령이 가능한 한 문화행사에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문화 융성의 한 방법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대통령#문화#문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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