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창조경제에 왕후장상의 씨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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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한 달 전쯤 몇몇 언론이 우리나라의 창조경제 산업 비중이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의 관련 산업 비중이 점점 감소해 국내총생산(GDP)의 31.2%에 그친다는 구체적인 수치도 들었다. 최근에는 한국 창조산업 비중이 2008년 7.5%에서 2011년 7.1%로 떨어졌다는 기사도 나왔다. 각각 다른 민간연구소의 보고서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필자는 동아일보와 베인앤컴퍼니가 공동 기획해 일반 독자와 기업, 정부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창조경제로 가는 길’ 시리즈에 깊숙이 참여해 창조경제에 관한 한 문외한은 면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창조경제 산업 비중이라니,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을 창조경제 산업, 창조산업으로 봤는지.

첫 번째 기사는 정보기술(IT), 금융, 문화 및 오락, 사업서비스, 교육, 보건 및 사회복지 등을 창조경제 산업에 포함시켰다. 다른 기사는 광고, 건축, 예술, 공예, 패션, 출판, 정보관련, 영상·오디오, 오락, 연구개발(R&D),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등 11개 분야를 창조산업으로 쳤다.

의문은 이어졌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창조경제 산업을 분류해도 되는 걸까. 쇠를 두드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근로자, 광물자원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농사짓는 사람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부가가치를 높여도 창조경제에 기여하지 못하는 걸까.

창조경제의 무대를 좁히는 것은 일부 언론이나 민간 연구소만은 아니다. 창조경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를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기술과 ICT에 접목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 산업을 강화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 여기에도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 활용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미래부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창조경제를 설파하고 있지만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고 비판받는 것은 특정 산업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동아-베인은 소모적인 창조경제 개념 논쟁을 지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아이디어 창출→아이디어의 사업화→사업의 확장→순환시스템 구축’이라는 4단계 사이클을 창조경제 생태계로 정의했다. 이런 틀에서는 경북 문경의 오미자도, 염도(鹽度)를 측정하는 젓가락도 창조경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이 4단계 가운데 창조경제의 씨앗에 해당하는 아이디어 창출에서 가장 취약했다. 학생은 시험은 잘 보는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직장인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에 짓눌려 숨죽이고, 사회에서는 남과 다르면 괴짜로 치부되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공간에선 ‘눈팅’만 일삼는 현실이 아이디어를 고갈시킨다.

붐비는 사거리,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에 갇혀 답답한 차 안에서 마냥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녹색 신호로 바뀌자마자 모든 운전자가 동시에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한두 명은 제때 반응하지 못해 뒤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제약이론’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창조경제 사이클에서 제약요인은 바로 아이디어 창출이다. 아이디어가 샘솟지 않는데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 벤처·중소기업에 돈을 몰아주고, 신시장을 개척한다고 창조경제가 다가오진 않는다. 더욱이 창조경제 산업이니 정보통신기술이니 하며 창조경제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은 이런 병목현상을 없애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 창출은 창조경제의 다른 세 단계보다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은 부족한 아이디어를 허투루 버리지 말고 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농부, 광부, 시장 상인의 아이디어도 창조경제에 약이 된다. 창조경제 하자는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창조경제#GDP#창조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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