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록]가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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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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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록 사회부 차장
이상록 사회부 차장
늦은 밤 어느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 가로등도 없는 길모퉁이에 여자와 남자가 서 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겁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거칠게 다가서는 순간, 정의의 기사가 나타났다. 한잔하실래요. 여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구해 준 남자를 따라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 밤 여자는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만다. 자신이 믿었던, 정의로운 기사의 탈을 쓴 또 다른 성범죄자에게. 그를 믿은 대가는 잔인한 배신뿐이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대부분의 속담이 그렇긴 하지만 이 속담이야말로 살아갈수록 정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만큼 많은 상처를 받았고, 또 앞으로 받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일수록 실제 속내는 겉보기와 다른 경우가 많다.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 겉으론 착한 척, 정의로운 척, 고고하고 깨끗한 척하지만 가면을 벗겨 보면 누구보다 사악하고 비열한,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뒤늦게 실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주저앉고 후회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을 수는 없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실제로 ‘가면 인간’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682명을 분석한 결과 성범죄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7%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대상 성범죄자들을 분석하면 그 비율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아는 사람의 범죄 비율은 비슷하거나 더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 기술이나 기계를 가면 삼아 횡포를 부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익명성 뒤에 숨어 근거 없는 비난과 비방을 일삼는 사람,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한 짐승으로 변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가면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언론의 검증이나 국회의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평생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져 자리에 올라 보지도 못한 채 물러나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 역시 가면 사회의 주인공들이다.

문제는 누가 가면을 썼는지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드러내 놓고 나쁜 짓을 하면 조심하고 피할 수나 있으련만, 가면 인간들의 평소 행동이나 겉모습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다. 어느 순간 돌변해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믿었던 누군가의 가면 속 모습을 보는 건 충격적이고 끔찍한 경험이다. 믿는 도끼가 찍은 발등은 그만큼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그렇게 깨진 믿음, 조각난 유리잔은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 당장 주변을 돌아보라. 당신이 진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그리고 거울을 보라. 당신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상록 사회부 차장 myzodan@donga.com
#가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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