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썽 많은 특정업무경비, 깨끗이 정리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 재직 시절 한 달 평균 400만 원씩 6년 동안 3억2000만 원을 받은 특정업무경비의 사적(私的) 유용이 논란이 됐다. 헌재의 특정업무경비는 재판과 관련된 공적(公的) 업무에 쓰이는 경비를 국가가 보조하는 것으로 업무보조비로 분류된다. 이 후보자는 이 돈을 개인계좌로 받았고, 일부는 이자가 높은 단기 고수익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했다. 여기서 셋째 딸 유학자금으로 송금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 후보자처럼 특정업무경비를 받는 고위 공직자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국회 상임위원장, 정부의 각종 위원회 위원장 등이다. 힘이 세거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는 기관들이다. 통상적인 ‘업무추진비’는 신용카드로 쓰고 영수증도 함께 내야 하지만 ‘특정업무경비’는 현금으로 매달 일정액을 받고 영수증도 첨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용 내용도 비서관들이 장부에 대충 기재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공적인 용도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사적인 곳에 쓰였는지 알 수 없게 ‘눈먼 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는 월급처럼 쓰지만 세금도 내지 않는다.

감사원은 2007년 4월 헌재 감사에서 “헌법재판 활동비 및 재판부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특정업무경비를 지급하고도 사용 내용 증빙을 갖춰놓지 않아 업무와 관련해 사용했는지 알 수 없도록 집행했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당시 감사원은 2006년 헌재의 특정업무경비 6억491만 원 중 4억6700만 원이 증빙서류를 갖추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 법규를 지켜야 할 헌재가 감사원의 시정 요구를 무시했다. 감사원도 과거에 이런 돈을 썼지만 수년 전부터 신용카드를 쓰고 영수증까지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헌재는 국회 헌재소장 후보자 청문특위에 경비 사용 내용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해 “헌재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 후보자의 사례를 보면 독립성과 중립성은 핑계고 다른 헌법재판관들도 특정업무경비 사용이 투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어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특정업무경비에 대해 “콩나물 사는 데 쓰면 안 되지…”라고 이 후보자를 비판했다. 특정업무경비로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고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을 두고 ‘콩나물 사기’에 비유한 것은 국민의 비난 가능성을 희석시키는 발언이다.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 외에도 여러 편법과 반칙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 헌재소장이 되더라도 국민의 존경과 신뢰 속에서 헌법기관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 후보자 청문을 계기로 권력자들이 쌈짓돈처럼 써온 특정업무경비 제도를 투명하고 엄정하게 재정비하기 바란다.
#이동흡#특정업무경비#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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