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지현]SNS 우울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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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모 대학에서 학생 347명을 대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관련 설문을 했다. 하루 16분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경우 자기가 쓴 글에 ‘좋아요’가 별로 없거나 댓글이 없을 때 외톨이가 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계의 가벼움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가식적 표현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요 몇 년 사이에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에 열광하고 있다. 유명인이 트위터에 올린 글은 실시간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다양한 이슈의 민감한 풍향계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 페이스북에 소소한 일상을 올리고 사회적 의견을 나누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새로운 관계 방식의 하나로 확고해졌다. 이번 조사는 바야흐로 부정적인 면도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현상을 밝힌 것으로 관심을 끌었다. 정말 ‘좋아요’를 못 받으면 우울증이 생길까.

돌이켜보면 이런 현상은 새롭지 않다. 전에도 인터넷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나면 수시로 접속해서 조회 수를 확인하고, 댓글이 붙었는지 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여기다 SNS는 개인의 오프라인 정체성이 모바일과 PC로 확장된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가 쓴 글에 대한 반응에 동일시하며 일희일비하는 것은 더 당연하다. 사이버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나를 드러내고, 글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속에서 글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고,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며 우리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런 심리적 애착의 형성 덕분에 힘들 때, 그 심정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고, 누군가에게서 듣는 작은 위로가 심장으로 직렬 연결돼 정서적 급유를 받을 수 있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온라인에서 받는 댓글과, 동의, 추천은 용기와 정서적인 안정감을 줬다. 그리고 나도 받은 만큼 상대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이타적 상호관계를 갖는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위로와 칭찬의 상호작용은 정서의 품앗이로 작용해, 가뜩이나 흔들리기 쉬운 현실의 삶의 노곤함을 줄여 주며, 힘을 북돋아 준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자라난 30대 이하의 세대에게 이런 방식은 더욱 자연스럽다. 이들은 현실과 사이버 공간 사이에 막힌 둑이 없이 감정이 오간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모자라는 것을 온라인에서 대신 충족할 수 있다. 내 글에 대한 ‘좋아요’ 하나, 멘션에 리트윗(RT)이 쏟아질 때, 훈훈하고 유머 있는 댓글을 볼 때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현실에서 사는 게 힘들 때일수록 고립감과 외로움은 커진다.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 쪼그라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사이버 공간의 친구들은 내 마음이라는 찌그러진 풍선에 바람을 넣어 준다. 그래서 세상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현실도 추운데, 온라인에서도 온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우울감이 시작될 것이다. 어디 기댈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상태니 말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기대한 만큼 충족이 되지 않을 때 망연자실해서 우울해하기보다, 한편으로는 오프라인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어느 한쪽에서만 해결책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세상은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양쪽이 이어진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관계의 흐름을 잘 꾸려 내는 것, 궁극적으로 감정의 대차대조표를 현명하게 흑자로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건강한 인간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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