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덴마크가 비만稅를 없애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덴마크 중도좌파 정부가 비만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직전 정부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지방 함량 2.3%를 초과하는 고지방 식품에 대해 포화지방 1kg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비만세를 세계 최초로 부과했다. 국민의 47%가 과(過)체중이고 13%가 비만인 상황에서 고지방 식품에 세금을 부과해 섭취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국민의 건강도 챙기고 세수도 늘어난다면 꿩 먹고 알 먹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비만세 도입으로 버터 가격은 14.1%, 올리브유는 7.1% 인상됐고 우유 고기 피자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꿀 수 없었던 국민은 저렴한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독일 국경을 넘었다. 덴마크 식품가게들은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좋은 의도의 세금이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시장을 왜곡시킨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비만세는 취지는 못 살리고 일자리만 줄인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 선의(善意)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사례는 세금 정책에서 많이 나타난다.

1696년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윌리엄 3세는 주택 창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창문세를 도입했다. 창문이 7개 이상일 경우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자 영국 집들은 창문을 하나둘 줄이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창문 없는 집까지 등장했다. 프랑스 창문세는 영국과 달리 창문의 개수가 아닌 폭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프랑스 국민은 폭이 좁은 창문을 만들고 창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해 세금을 피했다. 창문세는 프랑스 건축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도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 귀족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수염에 세금을 매겼다. 귀족들은 수염을 모두 밀어버렸다. 세금 걷을 욕심에 사회 환경이나 인간 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좌절된 역사적 사례들이다.

덴마크 국민은 정부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조세부담률은 47.1%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런 덴마크에서조차 정부가 국민의 식습관을 바꿔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한 세금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대선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재원마련 방안은 결국 증세(增稅) 카드밖에 없다. 세 후보는 덴마크 비만세 폐지에서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기 바란다.
#덴마크#비만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