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끝별]움직이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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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영화 ‘피나(pina)’ 안 봤으면 꼭 봐야 해. 넘넘 좋아. 나중에 시간 나면 내려받아 봐야지, 하지 말고 꼭 봐. 3D라서 극장에서 봐야 해.” 심미적 안목이 빼어난 데다 평소 조용조용한 언니가 이 정도로 환호하는 영화라면! 게다가 내 안의 나와 대화하면서 고독을 만끽하고 싶은 바야흐로 가을이라 하지 않는가!

빔 벤더스 감독의 ‘피나’는 현대무용사에 한 획을 그었던 피나 바우슈(1940∼2009)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 영화다. 춤꾼이자 안무가였던 피나는 인간의 몸과 영혼을 다루는 조율사였다. 인간의 육체를 언어나 붓이나 음표처럼 삼아 무대에 펼쳐 놓은 몸의 시인이자 화가이자 음악가였다. 피나의 무대는 시와 미술과 음악의, 무용과 연극의, 예술과 인문학의,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영화는 그런 피나의 춤에 3D라는 영상기술을 입혔다.

영화를 보면서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라는 문장을 떠올렸던 건, 무용수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은 물론이고 벌떡이는 심장 속까지도 들여다보일 것 같은 그런 3D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춤판이고 이때 춤은 언어 이전의 언어다. 우리 또한 삶이라는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고 늘 더 멋진 춤을 추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진정한 춤꾼은 춤을 통해 주변의 모든 존재를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든다, 마치 미다스의 손처럼. 영화 속 춤꾼들의 몸 또한 그 움직임이 가닿는 것들마다 생명 있는 것들로 꿈틀거리게 했다.

‘전설적 안무가’ 피나의 춤에 감명

피나가 안무한 춤들은 분출되는 생명의 리듬과 삶의 리듬으로 역동적이었다. 우리의 살아있음 그 자체가 세계와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전언이며 대화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었다. 인간은 몸에 고립된 고독한 존재이고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몸의 꿈틀거림을 통해 서로를 부르며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 꿈틀거림은 갈망과 주장과 저항과 변화의 의지가 담긴, 적나라한 만큼 아름다운 움직임이다.

‘피나’는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인간의 내적 동력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댄스영화와 달랐다. 피나는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을 갈망하는지, 왜 그렇게 갈망하는지를 에둘러 묻곤 했다. 사랑과 고통,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불화, 구속과 착취와 같은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질문들이었다. 단원들은 저마다의 답을 찾아야만 했다. 에둘러 물었기에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나의 춤꾼들은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슬픔을 표현했다. 에둘러 봄을 표현하고 달을 표현하기도 했다. 피나는 춤꾼들의 몸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가장 솔직하고 가장 뜨거운 답을 이끌어낸 후 안무에 선택하곤 했다.

또한 피나는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걸음 뒤에서 신뢰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들의 표정과 내면과 감정에서 비롯되는 몸의 언어를 읽어낸 후 이렇게 조언했다. “넌, 미쳐야 해, 더 미쳐야 해”, “단점도 보여줄 수 있으면 아름다움이 될 수 있어”, “왜 두려워하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네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냥 하면 돼”라고. 피나는 그렇게 춤을 통해 인간의 결점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두려움과 공포조차도 사랑으로 녹여내곤 했다.

피나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몸의 움직임 속에 깃든 인간의 영혼이었고 갈망의 언어였다. 피나가 “말은 인간 본연의 슬픔을 표현할 수 없지만 춤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에게 춤은 세계와 소통하고 싶은 열망의 언어였다. 피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춤을 선택했던 것이다.

“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도 자꾸자꾸 작품을 한다, 끝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녀에게 춤은 끝없는 결핍에의 불안과 고통에 대한 저항의 언어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변화하게 하는 의지의 몸짓이었다. 피나의 춤에서 인간의 내적 깊이,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깊이가 배어나는 까닭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헌신짝처럼 내던진 인문학적 성찰과 그 깊이에서 나온 아름다움이었다.

우리가 서로 부르며 다가갔으면…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어느덧 피나의 춤이 내 몸을 건드리고 있었다. 매일매일의 일과와 밥벌이에 딱딱해져 있던 내 몸 구석들이 들썩였다. 잊고 있었던 몸의 언어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내 곁을 지나는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당신은 움직이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이 가을에,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떨어지는 한 장의 나뭇잎마저도 바람의 힘을 빌려 움직이고 있거늘, 벌떡벌떡 뛰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우리가 왜 꿈틀거리지 않아야 하겠는가! 그러니 우리를 꿈틀거리게 하는, 꿈틀거리는 당신과 내가 서로를 부르며 서로에게 다가가 지금을 변화하게 하는, 그것은 정말 무엇인가?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정끝별#피나#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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