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종구]정책선거 실종, 누구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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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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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정치부 차장
윤종구 정치부 차장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정책선거 실종’ 얘기가 나온다. 선거철 단골 메뉴다. 원인도 늘 비슷하다. 정쟁에 묻혀서, 후보가 늦게 정해져서, 언론이 정책을 소홀히 다뤄서….

누구 탓일까.

후보 쪽부터 보자. 19일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문재인 후보에게 “선의의 정책 경쟁을 약속하는 자리를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구체적인 정책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개하겠다”며 넘어갔다. 박, 문 후보도 ‘안철수 왜 빨리 안 나오느냐’고 독촉만 했지 정리된 공약을 아직 제시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매니페스토운동을 이끌어온 강지원 변호사가 당선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정책중심 선거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출마하겠는가.

언론에서도 여전히 정책 보도가 미흡하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2009년 8월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주요 신문은 경제·노동·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연합 등이 주요 정당의 공약을 각각 수치화한 ‘채점표’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경제단체는 경제정책, 노동단체는 노동정책, 지방자치단체연합은 지방분권정책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또 몇 개 면에 걸쳐 공약의 세부내용, 필요한 재원과 조달방법, 연도별 공약달성 로드맵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것저것 표가 될 만한 정책을 모아 짜깁기로 발표했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공약 검증을 했는데도 민주당 정권은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줄줄이 공약을 폐기해야 했고, 정권은 신뢰를 잃었다.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을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는 어떤가. 자신들 전문 분야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공개할 용기와 정직함을 갖고 있나. 공약이 나오기도 전에 진영논리의 맨 앞줄에 서서 특정 후보의 외부 캠프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단체가 그 누구보다 정치화됐다는 평가를 받은 지는 이미 오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을 모아놓고 매니페스토 협약식을 갖고 정책선거를 독려하지만 국가기관으로서 냉정한 심판이어야 할 선관위가 주도적으로 선거방식을 이끄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선 선거 개입일 수 있다. 게다가 선관위는 기획재정부가 여야의 4·11총선 공약에 대해 산출한 재원분석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부기관의 선거 중립’을 이유로 거짓·과대공약이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이라면 유권자는 후보가 대선에 임박해 일방적으로 내놓는 공약만 보고 ‘깜깜이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무슨 수로 그런 공약의 실현 가능성, 재원 조달의 적정성 등을 판단할 수 있겠나.

공약을 엄격히 평가할수록 각종 통계와 정부 사업 전반을 꿰고 있는 여당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공약에도 ‘결산’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지난 선거에서 ‘이런 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하고 정권을 받아간 여당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는지 결산하는 일은 대선을 앞두고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일본 얘기를 하자면, 주요 신문은 여야의 공약을 소개하고 분석하기 전에 집권당의 ‘지난 공약 성적표’를 큼지막하게 보도한다. 후보자가 학력 하나 속였다고 당선무효까지 당하는 마당에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대형사업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는 행태를 그냥 놔두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정책선거의 출발점이다.

윤종구 정치부 차장 jkmas@donga.com
#정책선거#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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