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분권형 개헌, 제2의 DJP 불씨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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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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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분권형 개헌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12월 대통령선거 전에 되살아날 것 같다. 곳곳에 분권형 개헌의 잔불이 깔려 있는 상태에서 안철수 쪽도 민주통합당 진영과 교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지켜봐야 한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이 같은 안·민(안철수·민주당) 연합 가능성을 나에게 전했다. 대선 정국이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또다시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띄웠고, 이 정부의 2인자를 자처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바람을 잡았지만 분권형 개헌 카드는 사실상 용도 폐기된 듯했다. 바로 이 정치권의 ‘애물단지’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대선의 향방을 가르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분권형 개헌의 요체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을 분산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방 외교 등 외치(外治)에, 내치(內治)는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사실상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 지금 주목할 대목은 내용보다 분권형 개헌의 공론장이 여권이 아니라 야권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분권형 개헌에 적극적이다. 당내 선두인 문재인 의원은 지난달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총리, 장관들에게 대거 분산하는 분권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내각책임제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돼 있어서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부통령이나 총리가 하는 분권형 개헌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9월 말 민주당 대선후보가 결정되면 분권형 개헌이 당 차원의 공식 의제로 떠오를 것 같다.

민주당 원로들도 당 소속 대선주자들을 분권형 개헌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실적으로 안철수 없는 범야권 진영을 상상할 수 없다면 안철수와 민주당이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분권형 개헌이 묘책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박근혜와 맞붙을 대선후보를, 안철수는 정당이라는 안전판을 각각 확보하게 된다. 민주당으로서는 ‘안철수 대통령-민주당 총리’ 구도를 통해 절반의 승리를 챙길 수 있다. 야권 주변에선 1997년 대선에서 야권 승리의 견인차가 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안철수는 최근 펴낸 ‘안철수의 생각’에서 “권력의 집중화를 견제하는 기관들을 잘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안철수의 대변인 격인 유민영 씨는 민주당과 안철수의 ‘분권형 개헌’ 밀약설에 대해 “책 내용 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민주당과 안철수 쪽이 다각도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안철수가 출마 쪽으로 생각을 굳힐 경우 피해갈 수 없는 분권형 개헌 이슈를 역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안철수가 만약 분권형 개헌 공론화에 나선다면 자신이 강조해온 ‘나눔’의 가치로 포장할 것 같다. 안철수는 “나눔은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몫을 되돌리는, 수직적인 게 아니라 수평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자는 분권형 개헌을 ‘나눔의 시대정신’으로 코팅하면 여권을 뒤흔드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분권형 개헌을 제기했던 여권 내 친이(親李)계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친박(親朴)계가 ‘뺄셈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분권형 개헌에 깔린 권력분산의 가치는 더욱 부각될 것이다. 친박계 내부에 이미 굳어진 듯한 배타적 독식(獨食) 의식이 독약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오늘과 내일#정연욱#개헌#안철수#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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