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최영미]영국을 이긴 것만으로도 우승보다 더한 일을 했다

  • Array
  • 입력 2012년 8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시인 최영미 씨가 런던 올림픽 관전기를 보내왔습니다. 요즘 매일 밤 열대야에 땀을 흘리며 밤새워 TV 앞에 앉아 있다는 시인은 하루하루 런던으로부터 날아오는 승전보에 감동해 자주 눈물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시집뿐 아니라 여행과 미술 관련 에세이를 여러 권 펴낸 그는 열혈 축구팬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엔 축구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 유소년축구재단이사회 이사로 위촉됐습니다. <편집자> 》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걸까? 너희들이 정말 한국인 맞니? 내 이웃의 아들딸 맞니?

꼭 메달을 많이 목에 걸어서가 아니다. 월등한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서가 아니다.

나를 사로잡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 눈부신 빛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경기장 안에서, 그네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그 자체에 나는 매료되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낯선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박태환의 냉정함과 김재범의 열정, 신아람의 의연함에 나는 감동했다. 어처구니없는 실격 소식을 듣고도 그들은 태연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픔도 잊고 몸을 던지는 유도 김재범의 열정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아, 나는 문학을 위해 얼마나 충분히 나를 불살랐던가.

그리고 놀라운 한국의 펜싱 선수들! 유럽 문화를 대표하는 유럽인들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펜싱에서 우리는 그들을 압도했다. 그것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장점인 빠른 발과 임기응변의 창의력으로 우리는 그들을 이겼다.

5일 새벽 에페 여자 단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인들은 서양인의 방식으로 했다. 서양인 코치를 영입해 그들의 방식으로 싸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체구라는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우리만의 기술로 세계무대를 누볐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들이 자랑스럽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나는 펜싱의 팬이 되었다. 18세기 서구의 낭만적인 소설을 많이 읽어서인지 펜싱은 나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하는 운동 종목이 되었다. 어두운 무대에서 칼을 휘두르는 하얀 옷의 전사들, 캄캄한 어둠 속에 정적이 흐르고, 어둠을 가르는 날카로운 빛,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들, 복면 속에 숨겨진 원초적 살의(殺意). 아슬아슬한 김장감….

원래 검투, 즉 상대를 죽이려는 싸움의 기술이 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신사들의 스포츠로 거듭난 것이 바로 펜싱이다. 지금은 스포츠가 되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만 원래 펜싱은 상대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었다. 그 칼에 스러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나는 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에 가까운 운동이 펜싱이라고 생각한다.

그네들의 실수도 매혹적이었다. 실수조차 아름다운 것이 바로 스포츠이다. 최선을 다한 패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실수가 없는 경기는 재미가 없다. 실수를 안 하려는 인간이 재미없듯이.

5일 새벽 3시까지 나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한국 남자 축구 8강전과 박태환의 1500m 결승, 그리고 여자 펜싱 에페의 단체전 결승전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대에 편성되었다. 채널을 돌리며 나는 고민했다. 축구를 봐야 하나? 펜싱을 봐야 하나?

펜싱으로 결정했다. 펜싱이 금메달이 걸린 경기이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이번 영국전에 별 기대를 걸지 않았다. 멕시코, 가봉전을 보면서 우리 선수들의 소극적인 플레이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펜싱을 먼저 보다 축구로 채널을 돌렸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루하게 공을 차는 영국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생기가 넘쳤다. 중원에서 공을 장악했다. 볼 점유율이 높았다. 수비 조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인 지적에 앞서 나는 우리 청년들의 열정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공에 대한 열정, 우리는 영국인들보다 더 ‘공’을 사랑했다! 영국인들은 판에 박힌 플레이를 펼쳤다.

문득 올림픽을 앞두고 다른 경기보다 축구 중계 일정을 문 앞에 크게 써놓았던 런던 워털루의 술집이 생각났다(나는 7월 초에 올림픽이 보고 싶어서 런던에 갔다가 모친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급거 귀국했다). 런던에 머물며 영국인들의 높은 콧대에 질린 터라 그리고 그네들의 거짓말과 불친절에 실망한 뒤라 나의 통쾌함은 더욱 컸다.

에어컨이 없는 일산 내 작은 아파트에서, 마치 경기를 뛰는 선수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속에서 나는 우리 축구 대표팀의 선전을 보며 살인적인 더위를 잊었다. 재미있다. 멋있었다. 통쾌했다.

영국인들은 지금 이른바 ‘멘털 붕괴’라고 한다.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안 따더라도 축구만은 꼭 땄으면 좋겠다고 하던 그들 아닌가. 우리는 영국을 꺾은 것만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승보다 더한 일을 한 거다.

7월 말에 시작한 올림픽도 육상이 시작되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달리고 뛰고 헤엄치고….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개인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도구를 사용하던 우리는 우리 육체 본연의 능력을 많이 잃었다. 현대인들이 자랑하는 ‘기술’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노동과 인간성의 상실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점점 퇴화되는 운동신경을 다시 되살리는 스포츠. 스포츠 정신이란 바로 인간됨을 주장하는 것.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휴머니즘이다.

런던에 있는 모든 한국 선수들, 정말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최영미 시인
#영국#축구#올림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