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런던 올림픽 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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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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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올림픽 개막식에서 204개국 선수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지구촌의 일원임을 실감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가 수두룩했고 인구 20만이나 30만, 선수단이 10명 이하인 나라도 많았다. 한국은 큰 나라였다.

런던 올림픽은 일차적으로 스포츠의 대제전(大祭典)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부의 장(場)’이기도 하다.

최근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라는 인종비하 발언을 한 축구선수를 대표단에서 즉각, 그것도 올림픽에서 영구 퇴출시킨 스위스였다. 장 질리 선수단장은 트위터에 한국인 비난 글을 올린 미첼 모르가넬라를 퇴출시켰다. 스물세 살 청년의 사적 공간에서의 발언조차 용서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다인종 국가이자 각종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국제화된 나라의 품격이 느껴졌다.

그리스 육상 여자 세단뛰기 선수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가 쫓겨났다. 지금은 빚에 허덕여 ‘유럽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그리스지만 이국 문화와 사람에 대한 관용이 밴 문명과 고대 올림픽 발상지로서의 저력이 느껴진다. 말로만 다문화를 외치며 실생활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이 부끄러워졌다.

거친 플레이(모르가넬라)에는 야유를 보내고 오심(誤審)에 울어 버린 아시아의 머나먼 이국 선수(한국 펜싱 신아람)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던 영국 시민들도 인상적이었다. 승부 이전에 페어플레이를 중시하는 그들이야말로 영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의 당당함은 다소 놀라울 정도였다. 억장이 무너질 텐데 밝게 웃는 모습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담담함, 초연함의 경지를 느꼈다. 과정보다는 결과, 나보다는 남의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다.

역시 어이없는 오심 시비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판정은 심판 몫”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던 조준호(유도)나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양궁 선수들…승리 후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던 김재범(유도)도 멋졌다. 어느새 우리 젊은 세대들에겐 올림픽이 ‘전쟁’이 아니라 재능을 살리는 자기실현의 장이었다. 그들이 대견했고 이들을 키워낸 한국의 ‘헝그리 세대’가 고마웠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이번 대선에서 뛰고 있는 후보자들로부터도 보고 싶다.

북한 선수들의 선전(善戰)도 감동적이었다. 승리 후 눈물을 멈추지 않던 안금애(유도)나 방방 뛰고 너스레를 떨던 유쾌발랄 김은국(역도)에게선 연민과 자랑스러움이 겹쳤다. 말끝마다 ‘김정일’ ‘김정은’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그들과 우리를 가로막은 장벽이 추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지만 이념이 아닌 ‘땀’의 영역에선 그들도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승리에 도취하는 보통의 젊은이였다. 핏줄은 어쩔 수 없는지 남북 단일팀이 되어 최강 한민족이 올림픽을 누비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정신력 축구’가 아니라 ‘기술 축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들을 정도로 훌쩍 커버린 한국축구,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올림픽 시상대 디자인팀에 한국인 2명이 포함됐다는 소식, 한국 선수단 개폐회식 단복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런던 올림픽 베스트 유니폼’으로 선정됐다는 것 등등…. 꼽아 보면 ‘자랑스러운 한국’을 느끼게 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오심 판정에 열 받기도 하지만 승패를 떠나 인류 문명의 품격을 높여가는 지구촌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광화문에서#허문영#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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