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영호]농협지주 회장의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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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주간동아팀장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NH농협금융지주 제2대 회장에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20일 선임됐다. 옛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출신인 신 회장은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없지 않아서 일견 무리가 없는 인사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선임 과정부터가 투명하지 못했다. NH농협은행장을 겸하던 신충식 전 회장이 취임 100일 만에 돌연 자리를 내놓은 것도 석연치 않거니와, 이후 속전속결로, 그것도 밀실에서 후임자를 결정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다른 금융지주사 회장 선임 때와는 달리 회장 후보자에 대한 면접조차도 생략했다고 하니 뭔가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는 “농협 내부 출신인 신충식 씨가 그만둔 상황에서 다시 내부인사를 회장으로 올리기가 어려웠던 데다가, 외풍을 차단하고 대정부 및 국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끌고 갈 사람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설명이다. 노조의 주장대로 신임 회장이 한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몸을 담았고, 따라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면 그는 외풍을 막아줄 사람이 아니라 외풍을 불러올 사람이라고 해야 옳다.

이 정부 들어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는 주로 ‘힘 있는 명망가’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식으로 채워졌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강만수 KDB산은금융지주 회장이 그런 경우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이 그동안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문제는 세 사람 모두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 정권이 들어서면 유임보다는 바뀔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데 있다. 신동규 회장이라고 예외일까. 우리 정치의 현실에 비춰 쉽지 않은 일이다.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는 장기 전략을 짜고 추진해야 하므로 안정적인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두 금융그룹을 국내 정상급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의 하나도 장수(長壽) CEO였기 때문이다. 물론 라 씨가 노욕(老慾)에 눈이 어두워 이런저런 갈등과 알력 속에서 말년에 불명예 퇴진한 게 흠이 되긴 했지만.

지금껏 관료 출신으로 성공한 금융지주사 회장은 드물다. 노무현 정권 말기 재정경제부 차관을 하다 ‘낙하산 논란’ 끝에 우리금융지주 CEO로 취임한 박병원 씨(현 은행연합회장)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박병원 회장은 전임 회장인 황영기 씨의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 아무런 사후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판을 들었다. 그는 결국 ‘무능경영’ 시비에 휘말려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그 수모가 말이 아니었다.

물론 박병원 회장과 신동규 회장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박 회장은 거시경제를 담당해온 경제관료 출신이어서 금융을 몰랐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박 회장 본인도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사석에서 “나는 금융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반면 신 회장은 금융전문가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장은 관리들이 보는 것만큼 만만하지가 않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도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다. 겸허한 자세로 NH농협금융지주사의 발전을 위해 뭘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yyoungho.donga.com
#광화문에서#윤영호#금융지주사#농협지주#신충식#신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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