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엘리트 선수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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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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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특혜(favor)와 배려(consideration)는 다르다. 국어사전의 예문을 읽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당시 등록금이 없었던 그는 스승의 배려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요즘 ‘피겨여왕’ 김연아(22)가 ‘체육특기자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한 대학교수가 라디오 방송에서 “김연아의 교생실습은 쇼”라고 말한 게 발단이다. 김연아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달 30일 고소했고 해당 교수는 허위사실 유포가 아님을 강변하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해 ‘마린보이’ 박태환의 교생실습 땐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기에 억울할 것이다. 교수는 ‘스포츠 스타를 이용한 대학마케팅’에 경종을 울렸다가 고소를 당했으니 착잡한 심정일 게다. 김연아 측은 14일 고소를 취소할 예정이라고 밝혀 법정공방은 피했지만 앙금은 남아있는 듯해 안타깝다.

한국에서 각급 학교의 체육특기자 특혜는 한마디로 필요악이다. 국제 스포츠계에 코리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교육당국과 스포츠계의 합작품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조속한 전후(戰後) 복구와 경제 개발을 위해 재벌 위주의 ‘경제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참가 205개국 중 종합 7위(금 13개, 은 10개, 동 8개)로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떨쳤다.

체육특기자는 상급 학교 진학은 물론이고 재학 기간 내내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훈련과 대회 출전 등으로 수업에 빠지고 시험을 안 봐도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고 졸업장도 받는다. 이런 특혜가 없었다면 얼마 전 ‘슈퍼 여고생’ 김효주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최연소, 18홀 최소타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수업 시험 면제’가 학생 선수들에게 진정한 특혜일까. 서울의 경우 6월 현재 야구부는 중학교가 23개(선수 765명), 고교가 14개(선수 448명)다. 축구부는 중학교가 38개(선수 1474명), 고교가 28개(선수 918명)다. 고교 운동부가 적은 탓에 중학교 선수 중 40% 안팎은 서울에 있는 고교에 진학하기 어렵다. 대학 진학은 훨씬 더 좁은 문이다. 프로무대 진출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남 77세, 여 84세)은 이미 80세를 넘었다. 현역 시절 평생 쓸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체육특기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며 롱런하려면 지덕(知德)을 겸비해야 한다. 여기에 체계적인 학업은 필수요소다. 그들에게는 학생의 모든 책무를 면제해주는 ‘방임적 특혜’가 아닌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미국 대학들은 운동선수의 학업을 돕는 전담 부서를 운영하며 별도의 조교를 둬 ‘개인과외’까지 해준다. 우리나라 체육특기자들에게도 은퇴 이후 다른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는 소양을 갖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런던 올림픽이 다음 달 27일 개막한다. 한국의 목표는 ‘10-10’(금메달 10개 획득-종합 10위 이내)이다. 런던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태극전사는 100% 체육특기자 출신일 것이다. 그들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에서도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체육특기자 특혜#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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