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박만우]‘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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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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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7월 20일은 백남준(1932∼2006) 탄생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혹은 ‘20세기 미술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세계적 전위예술가’ 등의 화려한 평가가 늘 그의 이름을 따라다닌다. 그러나 정작 80주년을 맞이하는 국내외 추모 열기는 그다지 뜨겁지 않다.

조용한 ‘백남준 탄생 80주년’


백남준은 2000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으로 대대적 회고전을 개최했다. 작고 후에는 2010년 독일 뒤셀도르프 소재 쿤스트팔라스트미술관에서 역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간 후 그곳에서 예술가가 됐다. 그러나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 정착한 후 거기서 40년 넘게 살았다.

그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 보면 한국, 일본, 독일 그리고 미국이라는 네 나라가 예술가 백남준의 정신적 젖줄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쉽게도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백남준을 추모하는 미술계 일각에서의 움직임이 있지만 이렇다 할 만한 기념행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일본이 처한 경제와 문화 침체 탓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아쉬움이라도 달래듯 유일하게 스미스소니언미술관에서 올해 말 백남준 개인전이 열린다고 한다. 올해 글로벌 문화예술 캘린더에 백남준의 이름이 너무 소외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탄생 80주년 기념 차원에서 당연히 그의 고국이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자연인 백남준의 출생지라는 연고를 떠나서 80주년 기념사업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백남준은 놀랍게도 21세기 미래 창의사회를 주도할 역량이 한국인의 DNA에 내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백남준 기념사업을 미술 영역에만 가두어 둘 수만은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어찌 보면 지금의 케이팝(K-pop)과 한류의 가능성도 그 출발점은 백남준에 의해 제시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 6·25전쟁 그리고 끊임없는 이주와 정착의 경험을 통해 백남준은 단지 생존 본능의 획득만이 아니라 국가, 언어, 인종, 종교,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소통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이 소통 가능성에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어떻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1974년에 초고속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백남준의 통찰력은 훗날 심지어 자기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고 본인 특유의 유머 감각을 섞어 회고했을 정도다. 이런 확신과 소명의식은 그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창조적 발상 오래 기억되기를


역사적으로 볼 때 지정학적 환경 탓에 이질적인 문화 충격의 차이를 번역해서 오히려 ‘창조적인 반역’의 정신 유산을 남겨준 한국인의 지혜가 백남준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가 비빔밥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역설적으로 ‘약한 자의 힘’이라고 할까. 고난을 통해 체득한 한국인 풍류의식 속에서 백남준은 21세기를 헤쳐 나갈 문화적 동력을 발견했다. 그의 1973년 비디오작품 ‘글로벌 그루브’는 그런 한국인의 신명을 종합예술의 차원으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버전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의 출현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우리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오직 경쟁만이 지배할 뿐 소통과 공유의 정신은 이 사회 어디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및 페이스북 등을 창안한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돈을 벌겠다는 목표 이전에 남들과 소통하고 공유하겠다는 정신이 우선이었다. 자신만의 체험과 지식을 어떻게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비로소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남준은 이들의 선구자다. 오늘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이 많이 절망하고 있다.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 일차원적이고 피상적인 외형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문화 풍조에 물든 생활방식이다. 백남준을 행위모델로 삼아 그들의 삶에 한국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열정을 북돋아 주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10년 전 경기도가 용인시에 백남준아트센터 건립 계획을 확정하자 백남준은 병구를 이끌고 현장에 와서 직접 건립 용지를 확정했고 이 미술관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 명명했다. 이곳에서 지금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전을 비롯한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중심으로 그의 창조적 유산이 알차게 계승되려면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백남준의 유산이 정당하게 평가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무관심하다면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역사적 과오로 남지 않을까.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문화 칼럼#박만우#백남준#백남준 탄생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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