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끝별]여자를 암탉과 북어로 보는 사회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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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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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아이와 노인이 행복한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인이 사회의 과거라면 아이는 사회의 미래다. 사회의 약자이자 타자를 상징하는 그들의 인권과 복지가 구현된 사회는 안정적이고 선진적이다. 나는 여기에, 여성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남성성은 딸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완성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엄마이자 딸인 여성만큼 확실한 인간의 과거이자 미래인 존재가 있던가. 여성만큼 평생을 약자와 타자로서 희생하며 사는 존재가 또 있던가.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말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지도층’ 정치인들의 발언은 우리의 오늘을 대변한다. 여자 아나운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정말 ‘다’ 줘야만 하는 걸까? 영어(囹圄)의 몸이 된 유명 정치 팟캐스터에게 여성들이 보내는 정치적 지지 방식이 꼭 비키니 사진이어야 했을까? 결혼하지 않는 ‘암탉’은 잡아먹혀야 되고, 시집도 안 가본 여자는 ‘뭘’ 모른다니! 음담패설일까? 다른 여자의 평범한 ‘생얼’을 보고 토할 뻔한 남자의 눈은 도대체 무얼 보고 있었던 걸까? 언어 자체가 다의적이고 문맥적이기 때문에 그들 발언의 진의가 곡해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발언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고 폭력적이다.

우리 일상에 여성폭력-비하 범람


온라인상에서 범람하는 여성 비하의 시선들 또한 문제다. 대표적인 게 ‘○○녀’들이다. ‘여자임’을 부정적으로 호출하고 마녀사냥을 유도하는 그 명명법부터 못마땅하던 터에,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 있던 분당선 ‘담배녀 응징’ 동영상을 보던 내 심정은 그저 참담했다. 한 여자가 지하철 안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그런 몰지각한 행위는 분명 지탄의 대상이다. 여자는 담배를 끄라는 한 남성의 경고에 욕을 해대며 뭔가를 던졌다. 이에 화가 난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은 채 뒤흔들다 지하철 유리창에 처박고 급기야 내리꽂듯 내던졌다. 상대가 남자였더라도 그렇게 잔인하게 ‘응징’할 수 있었을까? ‘응징’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그 남자에게 줬단 말인가!

전(前) 의경이었던 한 남자가 ‘좌좀(좌익좀비) 김치녀’로 지칭되는 한 여성을 시위 진압 도중 폭행했던 일을 글로 써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때부터 패기 시작했어. 맞다가 아스팔트를 기어가길래…좀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한 거 같애, 엄청 얻어맞았으니 시위 안 나올 거 아니니”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마음이 막막해져버렸다.

살인과 폭행으로 이어지는 여성 대상 (성)범죄도 하루가 멀게 발생한다. 한 아가씨가 성폭행을 당한 후 토막 살인되고, 술 마신 남편에게 아내가 목 졸린 후 토막 살해되고,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리고 하굣길도 모자라 이제는 등굣길의 여학생들을 성폭행하고…. 번번이 그랬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노린 건 약자인 여성과 여아들이었다.

우리의 일상과 조직문화 속에 숨어 있는 여성을 향한 폭력은 생각보다 뿌리 깊다. 남성 중심의 직장에서 여자 상사는 무시당하고 여자 동료는 소외되며 여자 부하직원은 희롱의 대상으로 활용되기 일쑤다. 게다가 응징과 복종과 평가시스템을 공고히 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할 때 가장 쉬운 먹잇감 또한 여자다. 동향(同鄕), 동학(同學), 동성(同性)으로 결속된 ‘우리가 남이가’의 혈맹(!) 시스템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집단적으로 위기에 처하거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을 때 그 해소 대상으로 약자인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곤 했다. 응징이나 징벌의 대상으로 여성 희생양에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집단은 다시 안정과 결속을 얻곤 했던 것이다. 여자와 북어를 사흘에 한 번씩 패고서야 제 화를 풀었듯이 말이다.

폭력의 일상성과 정치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 사회의 조건이다. 그러나 폭력적 구조로부터 가급적 벗어나는 게,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게 문명이고 진보다. 힘이든 권력이든, 그 자체를 맘껏 부리고 행사하는 사회는 폭력적이다. 내가 만난 가장 센 권력은 행사하지 않는 권력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힘은 절제된 힘이었다. 내가 만난 최고의 권력은 사로잡히지 않는 권력이었고, 최고의 강자는 약한 자를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자였다.

여성을 희생양 삼는 사회는 야만적


아이나 노인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듯’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자주 목도한다. 남성성이 힘과 권력으로 행사되는 사회는 천박하다. 희생을 강요하고 그 희생을 감수해온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는 더욱 야만적이다. 영화 ‘은교’에 나온 늙은 시인의 말을 빌려보자면, “네 남성이 네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여성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늙음과 젊음이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듯 여성과 남성 또한 중립적이어야 한다. 성은 열등하거나 우등하지 않고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지 않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은 사라져야 하는 까닭이다.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동아광장#정끝별#여성폭력#여성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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