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용]‘봉지 벗기는 남자들’의 취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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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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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산업부 기자
박용 산업부 기자
인터넷에서 ‘김면발’과 ‘박스프’로 불리는 두 남자가 있다. 라면 블로그 ‘봉지 벗기는 남자들’의 운영자다. 봉지라면, 컵라면부터 외국 라면까지 70여 종의 맛을 보고 촌철살인의 평가를 올려 제법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이달부터 한 남성 잡지에 글도 연재한다.

‘이 남자들’은 올해 8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는 05학번 동기다. 대학가요제에 함께 출전했고, 예비군 훈련도 같이 다니는 ‘절친’이다. 졸업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기업 합격증을 거머쥔 것도 꼭 같다.

박스프는 올해 1월 LG생활건강 입사가 결정된 박종현 씨(26), 김면발은 7월부터 현대홈쇼핑으로 출근하는 김광희 씨(26)다. 박 씨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 오휘의 마케팅을 맡았고, 김 씨는 상품 바이어인 MD를 꿈꾸고 있다.

운 좋은 이 남자들의 ‘취업 스펙’은 어떨까. 그들의 말을 빌리면 그저 그렇다. 토익, 학점이 특출 나진 않다. 어학연수는 각각 관심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안 갔다. 공모전 입상 경험도 없다. 박 씨는 “에너지와 잠재력을 회사가 믿어줬다”고 했고, 김 씨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게 인턴 면접 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군복무를 하며 병영문학상에 당선돼 받은 상금 100만 원으로 제대 후 학교 앞에서 핫도그를 팔았다. 선배 노점상의 텃세에 “하루 매출 10만 원 미만, 영업은 저녁 전에 끝낸다”는 타협안을 내며 사업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2009년 학교 과제물로 시작한 라면 블로그가 그렇다. 박 씨는 “공정한 평가를 위해 라면회사의 의뢰는 받지 않았고, 라면회사에 입사원서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은 여럿이 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박 씨는 친구 7명과 함께 작가 노희경, 전 프로야구 선수 마해영, 서울시장 박원순 씨 등 21명의 명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내용은 ‘책 읽는 청춘에게’라는 책으로 나왔다.

경쟁 시장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의 밑천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술 유단자보다 실전에서 통하는 ‘뒷골목 고수’의 길을 선택한 ‘봉지 벗기는 남자들’과 이들의 실력을 알아본 회사의 안목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전략 경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비슷한 스펙을 쌓아 올리는 ‘스펙 경쟁’은 투자할수록 출혈만 커지는 이른바 ‘레드오션’이다. 기업은 남과 다른 창의성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구직자들은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안달하며 경쟁한다. 취업정보회사 사람인에 따르면 구직자의 86.8%가 ‘스펙 스트레스’를 받고, 64.1%는 ‘스펙 스트레스’로 자신감을 잃었다고 응답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인 구글의 채용 모토가 ‘다르게 뽑기(hire differently)’다. 이런 회사에 들어가려면 자신만의 스토리와 무기가 있어야 한다. ‘봉지 벗기는 남자들’이 착안한 ‘취업 블루오션’도 비슷하다.

“인터넷에 ‘무슨 스펙이 필요하다’는 식의 ‘취업 뽀개기(취업비결)’ 정보가 넘쳐난다. 이런 가이드를 따라가면 결국 모두 비슷해진다. 취업에 방해가 될 뿐이다.”(박스프)

“스펙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입사 후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재밌는 일을 찾았고, 생각한 건 꼭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김면발)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박스프#전략 경영#취업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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