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재동]유류세 인하는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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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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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인간은 과연 합리적일까.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류 경제학이 위기에 봉착한 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흔들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고를 때 우린 항상 최적의 선택을 추구한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남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을 고르고 만다. 창업 전선에 나서는 이들은 하나같이 성공을 장담한다. 그런데 통계상으로는 1년 내 망할 확률이 80%다. 명품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 같은 돈인데 공짜로 생긴 돈은 더 헤프게 쓴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이론으로 이런 현상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그들에게 이제 또 하나의 도전 과제가 생겼다. 한국의 운전자들이다. 요즘 많은 모임에서 기름값이 화제다. 모두 “이제 차는 두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말과 실제 행동이 따로 간다. 고유가의 부담 속에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운전자들이 주유소로, 고속도로로 향한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기름은 더 잘 팔린다.

흔히 값이 오르는데 소비가 늘어나는 재화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우선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명품이다.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과시욕구 때문이다. 또 하나는 ‘기펜(Giffen)의 역설’ 현상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의 국민은 빵 가격이 오르면 구매력이 감소해 비싼 다른 식품의 소비를 줄인다. 상대적으로 빵에 수요가 더 집중되는 것이다. 지금의 기름값 현상은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묘한’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국제유가와 휘발유 소비량의 추이를 보면,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장기적인 상승 곡선을 보인다. 유가가 휘발유 소비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기름값이 단기적으로 소비를 줄인 적은 있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던 2008년 중반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적응과 면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내 사라졌다. 여태껏 기름값이 엄청나게 올랐지만 사람들이 차를 덜 쓰게 만들 만큼의 임계점에 오진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 우리 국민의 기름 소비는 ‘중독’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너도나도 큰 차를 고집하고 출근시간 교통체증을 뻔히 알고서도 굳이 운전대를 잡는다. 운동을 하겠다면서 동네 헬스클럽에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위기의식이 너무 없다. 선진국들이 저마다 에너지 자립에 힘을 쏟고, 중동 산유국들마저 ‘석유의 고갈 이후’를 대비하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가대책이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추세를 되돌리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다시 제기되는 게 ‘유류세 인하’ 주장이다. 전체 휘발유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을 깎아주면 효과가 즉각 나타날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이는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유혹이다. 운전자들의 기름값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국가재정이 흔들리고, 국민들이 에너지 중독에서 벗어나는 날은 더 멀어질 것이다. 비록 지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유류세 인하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이 될 수 없다.

기름이 안 나오는 나라에서 기름값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한 달에 수입하는 원유만 90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5분의 1이다. 하루빨리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방도부터 고민해야 한다. 개혁은 빠를수록 좋고 깎아준 세금은 되돌리기 힘들다. 오랫동안 겪어 익히 알고 있는 경험칙 아닌가.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고유가#유류세#유가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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