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지형]요즘 성형이 두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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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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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웹사이트에 넘쳐나는 정치와 성형 얘기를 보면서 등장인물만 바뀔 뿐 내용은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적어도 성형에 관해서라면 생각을 달리하는 중이다. 사실은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끼다가, 오래전 TV에서 봤던 공상과학(SF) 드라마를 떠올리며 두려움의 실체를 깨달았다.

우주의 한 행성을 배경 삼은 드라마로, 그곳에는 지구인과 비슷한 용모를 가진 존재들이 산다. 그런데 이곳 남자들은 죄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지구인이 “당신들, 왜 얼굴을 가리고 있느냐”고 묻자 “방사능 사고 이후 모두 얼굴을 가리게 됐다”고 답한다. 뭔가 비밀이 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해프닝으로 한 남성의 마스크가 벗겨진다. 당황하면서 손을 올리지만, 얼굴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런데 전혀 흉측하지 않다. 영화배우에 가까운 얼굴이다. 왜 숨겼을까. 방사능 사고로 유전자에 집단적인 변형이 생기면서 모든 남성이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흉측한 게 재앙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정체성과 개성의 상실이다. 모두가 똑같아지는 일, 재앙은 그것이다.

무딘 눈썰미 탓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성형수술을 한 연예인들의 사진은 거기서 거기다. 성공한 성형에 관한 것이든, 실패한 성형에 관한 것이든 별 차이가 없다. 아래턱과 위턱, 그렇게 양쪽의 턱을 떼어낸 뒤 손질한다는 양악수술의 일반화 때문일까. 얼굴 윤곽을 수정하는 요즘 성형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획일적인 결과를 낳는다. TV와 영화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들인데, 그런 희소성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모두가 똑같아진다.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재앙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에게 화가 난다는 점부터 고백해야겠다. 대부분의 성형외과 의사들은 외모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이상을 치료하는 전통적 의미의 성형수술만 하고 있지는 않다. 문화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중요한 상징인 여성의 얼굴을, 치료 외의 목적으로 매만지는 일은 의술인 동시에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상 어떤 비즈니스가 그 정도로 상품 개발에 무심한가. 성형을 원하는 여성들이 무언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모델’을 의사들은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운동화 하나, 옷가지 하나도 비슷한 것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만약 여성들이 죄다 김○○의 눈, 이○○의 코, 박○○의 윤곽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의사들의 책임이 면제되진 않는다. 기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뒷골목의 무허가 장인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본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미학(美學)이란 학문이 있다. 이 학문의 역사는 특정 사물에서 아름다움의 객관적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해 온 과정과 일치한다. 아름다움이란 게 대상 자체보다 감상하는 이의 ‘태도’에 더 의존한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스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시청자를 사로잡는 그들의 매력과 아름다움은 이목구비 배치의 객관적 특성 정도로 환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정도 부분적인 특성으로는 절대 자극할 수 없는 시청자들의 ‘미적 태도’를, 많은 스타들이 이미 충분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자극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이지형 채널A 문화과학부 차장 apor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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