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과학계의 정치세력화는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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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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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정치의 계절이다. 각 당은 공천자 명단을 쏟아 냈고 세간의 관심은 온통 그쪽에 쏠려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년도 다가올 총선에 비하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과학계는 정치와 거리가 있는 집단이다. 스스로도 그렇거니와 국민의 인식도 과학기술인은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과학계 내부의 분위기는 다르다. 과학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약사처럼 과학자도 정치세력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들은 과학계가 정치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제 밥그릇도 찾아 먹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통해 정치권과 관료의 항복을 받아내는 의사나 약사에 비해 과학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불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총선이나 대선 직전에 자주 표출된다. 작년 말에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회원 130만 명을 거느린 21개 단체가 모여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련)을 결성해 정치권을 상대로 과학기술 홀대 현상의 시정과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과련은 곧바로 과학기술인 공천을 각 당에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당시 한나라당은 이를 적극 반영해 이공계 출신 공천 신청자에게 가산점 20%를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일부“과학기술 홀대 시정위해 필요”


공천이 거의 끝난 지금 이런 요구는 어떻게 반영됐는가? 가산점 20%는 지켜지지 않았고, 공천을 받은 사람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을 합쳐 10명이 되지 않는다. 명색이 이공계지 이들 대부분은 18대 국회의원이다. 취약지구 공천자들을 감안하면 소수의 신인 중에 몇 명의 과학기술인이 이번 국회에 새로 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과학기술계의 요구에 못이기는 척 강남갑에 물리학을 전공한 박상일 박사를 공천했다가 과거 표현을 문제 삼아 취소했다. 대과련이 공천을 요구했던 박영아 의원(송파갑)도 떨어뜨렸다. 이런 결과를 놓고 과학기술계가 “과학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불만을 쏟아내자 이번에는 야당에서 과기부를 부활하겠다고 추파를 던지고 있다.

과학계가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이는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필자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타는 데에도 긴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고, 연구를 하는 데에도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며, 좋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숱한 실패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과학계의 정치세력화는 선거철 직전에 힘을 모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라는 것 역시 과학 연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신뢰와 동맹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를 만큼 순진하기 때문일까. 이런 순진함은 과학은 순수하고 고상하지만 정치는 지저분한 이전투구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것일까.

과학의 정치화는 길게 보아야 한다. 우선 과학계의 정치적 힘은 선거철에 표를 담보로 한 요구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구축한 다양한 동맹세력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이 동맹은 정치인들과 맺는 친분관계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도 맺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해 찬성으로 일변하고 이들을 자극할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할 때 시민사회와의 동맹은 요원하다. 이럴 경우 130만 회원은 정치세력이 아니라 이익집단밖에는 되지 못한다. 과학계는 과학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법률이나 정책 입안 같은 문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성숙에 저해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닌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한 발언을 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과학계의 정치세력화는 이공계 출신 몇 명을 국회로 보내고, 이공계 출신 관료나 법관을 더 많이 배출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문제나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 주제에 관심이 없는 이공계의 전반적인 문화와 의식부터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잘사는 길이며 결국 민주주의를 구현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좋은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과학기술과 산업, 과학기술과 법, 과학기술과 정치의 복잡한 관계와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과학기술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의석수 대신 사회참여 더 고민해야


과학계의 정치세력화는 더 많은 의석이나 관료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얻기 위해 꾀할 일이 아니다. 그 대신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하고, 실천하는 과학기술인이 더 많이 나올 때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일 수 있다. 후자가 전자에 비해 훨씬 더 떳떳하지 않겠는가.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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