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박성희]‘진실 같음’이 진실을 이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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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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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영어에 베리시밀리튜드(verisimilitude)라는 단어가 있다. ‘진실을 닮은 그 무엇’이라는 뜻에서 ‘여실성(如實性)’으로 어색하게 번역되는 이 단어는 사실 그 연원이 깊다. 진실 같지만 진실이 아닌 것. 그러나 대중에게는 진짜 진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중요한 웅변기술로 다룬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말로 에이코스(eikos)라고 불린 이 기술을 연마하면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살인죄도 모면할 수 있었다.

‘진실 같음’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몸이 왜소한 사람이 덩치가 큰 사람을 때려 눕혔다는 혐의로 법정에 불려왔다고 가정해 보자. 덩치 큰 사람이 아무리 강변해도 왜소한 이가 “저를 보십시오. 어떻게 저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하면 사람들은 믿는다. 군중이란 원래 숨어있는 진실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진실 같음’에 더 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대중이 믿지 않는 진실보다 대중이 믿는 ‘진실 같음’이 더 설득적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이야 과학이며 계몽과는 거리가 먼 시대이고, 노예를 고문해 받아낸 자백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무지막지한 시대였으니 진실이 세치 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눈부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세기를 거치고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실을 향한 사투가 계속되는 것은 실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과학적 증거가 나오면 그걸 반박하는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등장해 헷갈리게 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황당한 괴담이 나란히 생육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 섭취해 기존 의견을 강화시킨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로 분출되는 의견과 감정의 홍수가 종종 사실과 진실을 휩쓸기도 한다.

올해는 큰 선거가 두 개나 치러지는 정치의 해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진실 같음’의 영역에 속한다. 옳든 그르든 대중의 믿음에 따라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표를 얻고자 뛰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진실 같음’으로 자신을 포장하느라 분주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런 그들을 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숨어있는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대중이 인지하고 현명함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비록 ‘여실성’의 영역에 속하지만 정치야말로 사람들이 편안하게 ‘진실’을 추구하도록 해주는 최고의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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